맥락 읽기

이해와 소통, 질문의 중요성

by 행복스쿨 윤정현

문해력이나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잘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맥락(脈絡)이란 ‘혈맥을 잇다’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맥락 읽기는 핵심이 되는 연관성, 곧 어떤 것의 의미가 제대로 연결이 될 수 있도록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문장이 길어진다든지 대화가 길어지면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해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코로나 시대와 온라인 게임의 MZ 세대들이 오프라인이나 전화 목소리의 대화보다는 메시지로 소통하는 경험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짧은 단문 메시지와 단답형 대화, 감탄사나 형용사적인 감정 표현이 많다. 이런 소통 방식은 오해와 왜곡을 낳고, 결국 불통으로 인한 스트레스만 남는다. 이는 소통을 제대로 못하는 불통의 현대인들에게서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친구 요즘 별로야.”

“오늘 비가 와서 짜증 나.”

“재미없어.”

“맛이 별로 없다.”

“영화 초반에는 재미없었어.”


이런 짧은 대화는 의미도 없고, 아무리 많은 시간 함께 어울려도 뒤돌아서면 공허하고, 피곤함만 쌓인다.


“요즘 그 친구랑 대화하다 보면 서로의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걸 느껴. 물론 다를 수는 있지만, 존중감이 없는 느낌이어서 더 그래. 그래서 약간 거리를 두게 되었어.”

“비가 오니까 괜히 마음이 조용해지고, 하루가 느리게 느껴져. 그러다 보니 옛 추억들이 떠오르네. 너랑 함께했던 청소년기의 추억들이.”

“처음엔 어렵지만 원리를 알게 되니까 흥미가 생기더라. 모든 게 그렇지 않을까? 배운다는 것은 그런 과정들이 쌓인 결과물이니깐.”

“처음엔 평범했는데, 먹다 보니 은근 향이 깊더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사람이고 싶어. 깊고 오래가는 끌림이 있는 친구 말이야!”

“처음엔 지루했는데, 후반부 갈수록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서 몰입됐어. 감정 이입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단문 대화를 보면 친구에 대해서 비난하였고, 날씨에 대해서 하소연하였으며, 배움에 대해서 친구에게 스트레스를 풀었고, 음식에 대해서 짜증을 냈으며, 영화에 대한 비난으로 시간을 소비했다는 푸념의 대화뿐이다. 이런 만남의 시간은 서로 피곤하다.


그런데 장문의 대화는 지성인의 교양을 언급하였고, 날씨로 인해 친구와의 행복한 추억을 이야기하였으며, 배움은 어렵지만 그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배움의 가치를 나누었고, 음식을 통하여 좋은 친구는 어떤 존재인지 그 의미를 나눈 대화였으며, 함께 영화 관람을 통해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힐링이 된 감동의 표현으로 대화의 격이 전혀 다르다. 이런 대화의 시간은 서로 행복하고, 또 만나고픈 향기를 남긴다.


위와 같이 같은 주제라도 전혀 그 깊이와 의미가 다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친구와 대화하면 그 시간이 행복해진다. 그런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나 자신이 그런 성향의 언어를 구사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위 단문형 표현은 맥락이 사라진 ‘느낌의 결과만 남는 말’이다. 장문형 표현은 맥락형 표현으로 ‘느낌이 생겨나는 이유’를 포함한 말이다. 이런 표현이 인간 본성의 심리가 충족되는 언어 구사다. 사람들이 말하는 ‘내가 왜 좋아?’, ‘나의 무엇 무엇 때문에 좋은 거야?’에 따른 근원적 답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 또는 ‘내가 기분이 좋아서’라는 답변은 성의도 없을뿐더러 자기 위주다. 그런데 ‘내가 힘든 얘기할 때 판단하지 않고 들어줘서 좋아.’ 또는 ‘너랑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 같아서 좋아.’의 답변은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전자는 ‘반응(反應)’의 언어이고, 후자는 ‘사유(思惟)’의 언어다. 반응의 언어는 무관심의 언어로 상대방의 마음은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 위주로 대화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대화 방식이다. 상대방이 말을 했으니 거기에 반응만 한다. 사유의 언어는 가치 추구형 언어로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하며, 서로에게 이로운 방식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오래가는 관계를 지향한다. 반응 언어는 한마디로 생각 없이 말하는 언어고, 사유의 언어는 생각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언어다.


반응의 언어나 단문형 표현들은 “너는 맥락도 없이 이야기하냐?”라는 표현처럼 앞뒤 자르고 대화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면 대화가 뚝뚝 끊어진다. 이해와 소통을 위해서는 위와 같이 맥락을 넣어 표현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나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자신을 잃었다.” 이 문장에서 목적이나 방향성, 노력은 ‘인정받기 위한 애씀’이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맥락은 자신을 잃어버린 아픈 사연과 마음의 상처다.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대화가 달라진다.


A : 어제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잤어.

B : 나 커피 좋아해.

A : 갑자기 무슨 커피? 너는 맥락도 없이 이야기하냐?


위와 같이 답변하면 대화가 짜증 난다. 자기 위주의 맥락 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위 B의 답변을 맥락 있는 말로 바꾼다면, “그랬구나, 많이 피곤했겠다. 요즘 잠이 부족했지? 커피라도 마시면서 조금 쉬자.”로 표현하면 부드럽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B가 먹고 싶은 커피로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팀장 : 이번 프로젝트 예산이 줄어서 고민이다.

팀원 : 점심 뭐 먹을까요?

팀장 : 지금 예산 얘기하고 있잖아! 맥락 없이 말하지 말고.


직장에서 팀장님의 예산 고민에 점심 먹을 이야기를 꺼낸다면 화가 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이렇게 가끔 엉뚱한 말을 하는 무개념의 사람도 있다. 이때는 “아, 예산이 줄었어요? 많이 고민되시겠네요. 혹시 점심시간에 예산 아이디어도 같이 이야기해 볼까요?”라고 하면 좋다. 팀장님을 존중하면서 함께 고민해 보겠다는 의도가 들어가 있어 좋은 대화가 된다.


또 답변이나 대화가 어려울 때는 질문형으로 대화를 이끌어 내면 좋다.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일이 생기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어요?”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어요?”


위와 같은 질문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존중과 배려가 들어가 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꿈과 이상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준다.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에 대해 무관심한데,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 있는 대화나 질문을 한다면 끌리게 된다. 기분 좋은 질문은 소통을 행복하게 이끌어 주는 조미료가 된다. 그 질문 안에는 공감이 들어있고, 마음을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미래로 확장하려는 개념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 친구가 “아! 오늘 기분 잡쳤어! 짜증 나!”라고 했을 때, “또 왜 그래? 별일도 아닌데 예민하게 구네.”라고 반응하면 서로 감정만 격해진다. 이때는 “그 상황에서 많이 속상했겠다. 어떤 점이 마음 상했는지 조금 얘기해 줄 수 있을까?”라는 식으로 질문하면 상한 마음도 대화 속에서 풀어진다.


상대의 대화를 놓치거나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바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셨어요?”처럼 단답형 또는 직설적으로 되묻기보다는,


“그렇게 처리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씀하신 건가요?”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면 일정은 그대로 진행하면 된다는 의미인가요?”

“혹시 ‘그렇게’라는 게 기존 방식 그대로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조금 바꿔서 하자는 의미일까요?”

“제가 앞부분을 놓쳤습니다. 앞부분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식의 대화는 서로를 부드럽게 만든다.


『걸작을 읽고, 책에 대한 감상을 달랑 한 줄만 쓰는데, 그 한 줄이 인상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재밌었다. 꿀잼이야!” 이런 식으로 감탄사만 남발한다. 한 권을 읽더라도 장문의 독후감을 써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혹시나 '글을 쓰고 싶다, 아니면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라고 한다면 내가 느꼈던 감정을 서툴러도 길게 써보는 게 어떻게든 중요하다. 그런 경험을 계속해서 해야 돼요. ‘너무 소셜 미디어 세상이 되면서 감탄사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라고 예전에 말했는데, 문장이 짧아지고, 감탄사가 많아지면서 그런 경향이 있다.』 이 말은 배순탁 작가가 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깊은 호흡으로 표현하는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이 맥락 있는 표현을 배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기 룰이다.


대화란 어찌 보면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이다. 그 선물이 지저분하고, 흙 묻은 포장지에 넣어서 준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맥락 있는 소통이란 예쁜 선물만이 아니라 그 선물의 포장지도 예쁘게 포장하여 주는 배려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이왕이면 더 나은 것으로 고르라.’는 속담이다. 보이지 않는 예쁜 마음이 선물이라면, 예쁜 말은 보이는 예쁜 포장지다. 말이 예쁘지 않으면 그 선물이 아무리 예쁠지라도 뜯지도 않고 버린다. 우리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말이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그래서 마음도 예쁜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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