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 “뭐해?”
어느 날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뭐해?”라고. 여기서 “뭐해?”라는 의미는 무슨 뜻일까? 우리는 가끔 힘들고 외로울 때 툭 건드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때 저런 신호를 보낸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면 ‘너’라는 사람의 향기를 나누고 싶은 사연이 그 안에 들어있다.
“너랑 술 한잔 기울이며,
너랑 차 한잔 마시며,
너랑 밥 한 끼 먹으며,
너와 함께 길을 걸으며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외로움을 나누고 싶어!”라는 마음의 편지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그런 사연을 실어 그나마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너의 위로가 지금 필요하다고...
왜 그럴까? 그건 ‘민망하거나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요 방어기제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가까울수록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마음속의 이야기를 오히려 하기 어렵다.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밀어낼까 봐, 거절할까 봐 그렇다.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 상처를 받는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거절을 받으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외롭고 고독한 세상에서 위로와 인정, 지지와 격려를 받고 싶어서 상대에게 노크를 하는 건데, 오히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자존심에 상처받을까 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은근슬쩍 찔러보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대화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격려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위로도 아니다. 그냥 옆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야기에 호응하고, 맞장구치며, 처진 어깨에 힘을 불어넣어 주기를 말하지 않는 눈빛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 이 말은 '내가 너를 좋아해!'라는 말처럼 우리는 마음의 원함을 민낯으로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돌려서 상대방의 반응을 지켜본다. 그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비즈니스 차원에서 만나는 사람인지를.
우리가 마음의 눈을 가졌다면, 타인이 우리에게 노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뭐해?", "어디야?", "저기", "~먹고 싶다"
"어디 안 갈래?", "뭐가 생각난다."
"주말에 시간 있어?", "그 영화 개봉했데!"
이런 말들은 상대방이 나를 부르는 소리다. 시간 좀 있느냐고. 시간 좀 나에게 내어줄 수 있느냐고. 네가 필요하다고, 너의 위로가 필요하고, 너의 칭찬이 필요하고, 너와 함께하고픈 시간이 필요하고, 너의 인정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네가 내 옆에서 대화를 나눠주고, 말을 들어주고, 그 말에 호응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그의 영혼이 간절히 부르는 소리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걸 알아듣는 사람은 극소수다. 생계와 스트레스로 그런 소리를 하찮게 여긴다. 그 하찮게 여겼던 그들의 손 내밀음을, 저버렸던 무관심은 자신이 외로운 시간이 오면 깨닫는다.
누구도 만날 사람이 없고, 누구도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고, 누구도 자신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지 않을 때 안다. 그렇게 혼자가 되었을 때, 이 지구에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 사실이 가슴속으로 스며들 때 깨닫는다.
그런 시간이 미소 짓는 삶으로 이어지려면, 누군가 그대를 향해 노크를 하면, 그를 향해 달려가라. 거기 외로운 영혼이 그대를 향해 울고 있음을, 그 만남을 통하여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는 인연과 행복 속에서 신은 그대와 함께 사랑을 속삭여 줄 것이다.
“뭐해?”라고 불렀던 친구는 “밥 먹었나?”라고 묻는다. “아직”이라고 말하니 “소주가 생각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라고 말하며 저녁을 함께 보냈다. 2시간을 함께 보내고, 헤어졌는데 메시지에 다음과 같이 보냈다. “내 영혼의 치유사”라고. 우리는 그렇게 작고 소소한 것에 힐링을 주고받는다. 나 또한 그런 소통으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코칭을 받았던 후배가 마음이 허전해서 전화 왔다.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안 따라 준다고, 그래서 며칠 동안 힘들었다고 한다. 한참을 통화한 다음에 일주일 후 다시 통화했다. 그러면서 커다란 것을 하나 깨달았다고 한다. 그동안 나를 생각할 때,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온 기사님 같은 커다란 존재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성품의 인격을 가지고 코칭하기엔 멀고 먼 존재로 여겼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전 모임의 어떤 회원이 힘들어하면서 상담 요청을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데, 마음이 약해 자책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하시고 계시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 그런 마인드로 살아가시면 된다. 그리고 자신을 안아주고, 존중해 주시라!”라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모임장으로서 그렇게 자신도 타인을 위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고 한다. 그때 나와 동등한 일을 하고 있으며, 그때 마음도 행복감과 함께 충족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형님도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동등한 사람이구나!”를 체감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다. 주고받음을 통하여 깨닫는다. 인간을 통하여, 인간으로 인해, 자신이 위로받았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상호 마음의 교류를 통하여 외로운 이 지구에서 살아갈 의미를 발견한다. 외로움의 채움은 외로운 영혼들을 채워줌으로 채움을 입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도록 태초부터 설계되었다.
서로 사랑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