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시 짓다
지진이 휩쓸고 간 자리는 기괴할 만큼 고요했다. 시간은 초침을 잃은 시계처럼 멈춰 섰고, 나는 낙상을 입은 채 차디찬 방바닥에 누워 그 정지된 시간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보일러의 온기조차 닿지 않는 바닥의 냉기는 무너진 자존감의 온도와 닮아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나는 내가 정말 폐허가 되었음을, 더 이상 일어설 기초조차 남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마치 자재 공급이 끊겨 흉물스럽게 방치된 유령 건물처럼, 나는 그렇게 한동안 삶의 공정(工程) 바깥에 놓여 있었다.
그 차가운 바닥은 내 인생에서 가장 낮은 지하실이었고, 그곳에서의 일 분 일 초는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었다. 하지만 이 폐허 밑에 그대로 매몰될 수는 없었다. 붕괴 직후, 나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긴급 조치에 들어갔다. 항우울제를 다시 복용하며 가림막을 세웠고, 주변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다행히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언니들은 커피와 단것을 사주며 무너진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중 예은 언니는 단순히 위로에 그치지 않고, 냉철하게 사고 현장을 분석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잔해 속에 고개를 파묻은 채 자책하고 있었다.
"언니, 역시 내 탓이야. 내 몸이 특수해서, 내가 부족해서 그가 떠난 거야."
하지만 언니의 진단은 달랐다.
"그날의 일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두려움의 충돌 사고'였어."
언니의 말에 따르면, 남자에게 있어 첫 관계에서의 기능적 실패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남성성의 사망 선고이자, 남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수치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나를 보고 흥분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진짜 원인은 '타이밍'이었다. 그가 기능적 실패로 인해 가장 초라해지고 작아진 그 순간, 나는 위로한답시고 지하실의 비밀을 들이밀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의 이해심은 자존감이 바닥난 그에게 위로가 아니라, 감당하기 벅찬 압박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론이 났다.
"그는 네 과거를 감당 못 한 게 아니야.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한 거야."
멍하니 언니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내 집이 무너질까 봐 도망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 무너질까 봐 도망친 것이었다.
이제야 그날의 기억이 소화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폐허 밑에는 아직 기초공사가 남아있다. 공기(工期)는 충분하다. 나는 나를 다시 재건축 할 것이다.
이번 사고로 확실한 기준이 생겼다. 다음엔 내 깊이를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깊이마저 품어줄 수 있는 '지내력'이 튼튼한 사람을 만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