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션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내 인생에서 외면과 내면 모두 가장 거센 파도가 일렁인 시기였다.
화장법을 배우고,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찾고, 자기 관리를 하는 시간들은 즐거웠다. 그건 평생 유예해 왔던 나를 찾는 과정이었으니까.
가장 걱정했던 문제들도 하나둘 해결되었다.
첫째, 패싱(Passing). 사람들이 나를 여성으로 볼지, 내 과거가 들키지 않을지에 대한 불안은 이제 사라졌다. 나는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불리고 살아간다.
둘째, 신체적 적응. SRS(성전환 수술) 후 회복기는 끝났고, 몸은 안정적인 유지기에 접어들었다.
가장 큰 난제들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마지막 숙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자존감'이었다.
나의 자존감이라는 독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의 원인은 명확했다.
1) 불임: 의학적 불능.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2) 과거: 지울 수 없는 남성으로서의 역사.
3) 제약: 위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배우자 선택과 결혼에 제약이 생긴다는 현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데, 그 평범함이 나에게는 기적이야."
나는 이 바꿀 수 없는 사실을 쥐고 괴로워했다. 스스로를 부족한 존재라 여기며 온전히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친한 언니가 건넨 조언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언니는 나를 억지로 위로하려 하지 않고, 아주 현실적이고 명쾌한 해석을 내놓았다.
"지송아, 불임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바뀌지 않는 사실을 두고 괴로워하는 건 시간 낭비야.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아.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차라리 네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말.
"네 과거는 숨겨야 할 오점이 아니라, 그냥 '너'야. 과거를 분리하려 하지 말고 수용해.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자존감이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내 과거를 어떻게든 잘라내고 싶은 혹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언니는 그것조차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일부라고 말했다.
결혼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녀 양육만이 목적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에게 주는 안정감이 더 큰 본질이라면, 나의 결핍은 다른 부분으로 충분히 보완(Compensation)할 수 있는 문제였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이 깨달음이 왔다고 해서 당장 내일 자존감이 완벽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또 흔들릴 것이고, 며칠, 몇 년 동안 나 자신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잘못된 게 아니라,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서사를 가졌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사용 승인' 도장을 찍는다.
서사는 죄가 없다. 나는 이 서사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흔들릴 때마다 꺼내 볼 나의 기도를 적어둔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불임과 과거)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 (Reinhold Niebu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