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별 전략 수립 업무방식의 차이
앞으로의 진로를 꿈꾸는 많은 대학생들이 희망하는 업무 중의 하나가 ‘전략 수립’ 업무이다. 내 경험상 경영학과 학생들이 특히 ‘전략/Strategy’ 업무를 희망한다. 올바른 전략 수립은 모든 기업에게 필수적인 활동이나, 각 기업별로 전략 수립 업무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매우 천차만별이다. 개인적으로 운 좋게도 국내 대기업, 외국계 대기업, 스타트업, 컨설팅 기업에서 전략 수립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짧은 인턴생활만 경험했던 컨설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에서의 전략 수립 방법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업무를 하는 방식은 그 기업의 문화와도 직결된다. 단순히 업무 방식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조직화 방법부터, 회의 방식, Co-work 문화까지 기업문화에 기반한 비교를 해보았다.
나는 국내 한 전기전자 제조업 관련 대기업의 전략마케팅그룹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약 30조 매출을 발생시키는 해당 기업의 전략마케팅그룹은 CEO 직속 조직으로 약 80명 정도가 근무하였다. 국내 대기업 전략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 이는 전략 수립 후 빠른 Action을 가장 최우선 업무 순위로 여기지 않고, C-Level에 대한 보고를 가장 중요한 업무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물론, 대규모 조직에서 모든 정보를 잘 간추려 의사결정권자와 커뮤니케이션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받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올바른 전략적 의사결정도 빠른 실행으로 연결되어야만 의미가 있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이러한 업무 우선순위 때문에 실제 실무자들은 수많은 보고서 작성 격무에 시달리게 된다. 임원에게 올리는 보고서의 경우 팀장과의 2~3차례 보고서 리뷰 및 수정을 기본적으로 거치며, C-Level 보고의 경우 200 페이지 이상의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 방식에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보고를 위해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며, 직관적인 Logic 개발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임팩트 있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필자는 보고서에 다양한 Intro 영상을 삽입해 본 적도 있으며, 유명 드라마/소설과의 비유, 역사적 사실과의 대조 방법 등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 이러한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고민은 누군가를 설득하는 방법을 극대화해본다는 측면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현재의 직무에서도 큰 자산이 되었다. 또한 직관적인 Logic 개발을 위해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과 시장 및 소비자 조사를 진행하고, 최신 시장 예측 방법론을 도입을 고민한다는 점도 타 기업들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깊이 있는 전략 수립 업무였다.
전략 수립 업무는 다양한 정보를 취합하여 자신만의 Logic을 전개하는 업무로,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Logic을 소개하고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은 기업 문화 특성상 낮은 직급의 실무자가 높은 직급의 실무자 의견을 반박하기 매우 어려운 문화이다. 큰 틀의 가설은 상위 직급에서 수립해 놓으면 하위 직급의 실무자는 해당 가설 및 Logic에 알맞은 정보 조사 및 세부 Logic을 개발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필자는 가장 큰 한계를 느꼈었다. 해당 분야를 1주일 고민한 실무자보다 1시간 보고 받은 임원의 가설을 따라가야 한다면 그 어떤 실무자라도 큰 동기를 받기란 어려울 것이다.
내가 전략 업무를 경험한 또 다른 기업은 외국계 대기업이다. 해당 기업은 25조 매출 규모의 독일계 화학회사로, 중국 상하이에 위치한 Asia Pacific HQ의 Strategic Planning Office에서 근무하였었다. 해당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Slim한 조직 규모였다. 상기의 국내 대기업과 전체 매출 규모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조직 규모는 거의 1/10 수준으로 약 7명의 임직원이 Asia Pacific 나라와 관련된 전략 업무를 수행하였다. (Asia Pacific 지역은 오세아니아까지 포함하였으며, Global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였다.) 작은 조직의 가장 큰 강점은 불필요한 업무가 적다는 점이다. 조직 리더는 임원이었으나, 조직이 작아 실제 실무에도 직접 참여하였으며, 실무를 아는 임원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므로 업무의 효율성 극대화가 가능하였다. 국내 대기업과 비교한다면 수많은 보고서 리뷰 및 수정 작업은 전혀 없으며, 몇 번의 구두 회의를 통해 보고서의 방향성이 결정되었다. 또한 외국계 기업답게 밖으로 드러나는 직원들의 직급이 없기에, (업무 시에는 상대방의 영어 이름을 부름) 누구나 자유롭게 본인의 Logic을 이야기하고, 가설을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낮은 직급의 실무자들도 업무의 Initiative를 쥐고 높은 Motivation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조직의 Slim화에 따라 적은 Resource는 업무 시 항상 문제가 되곤 하였다. 실무자 6명이 각 나라를 쪼개어 담당하면서 주요 자료를 각 국가에 요청하지만, 자료를 취합하고 분석하며 Implication을 찾아내는 업무만으로도 대다수의 팀원들은 종종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많은 업무 Load로 인해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해보긴 어려웠으며, 기존에 개발된 Logic을 각 국가에 대입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략 업무 경험이 많아 관련 업무가 능숙한 인원의 경우에는 본인이 Initiative를 쥐고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으나, 필자의 경우 경험이 적은 상태로 해당 업무를 시작했기에 동일한 방법론 외에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볼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속될수록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한계를 느꼈었다. 해외 체류 기간이었기 때문에 업무 관련 자기계발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도 개인적인 문제였다.
위에서 설명한 경험을 한 이후 나는 현재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드문 B2B 스타트업에서 국내외 사업개발 업무를 담당하며 시장 진입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사실 스타트업은 외국계 대기업보다도 더 극단적인 조직 효율화를 추구하기에, 현재의 스타트업에도 전략업무만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사업개발 직무를 하는 인원들이 실제 영업 활동에서의 시장 정보와 고객 보이스를 전달해주면,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 수립 업무가 진행된다. 필요시 인턴 등의 비정기적 리소스를 활용하여 리서치 업무를 진행한다. 큰 조직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산출물의 형태가 보고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해외 대기업 조직은 전략 수립 및 실행 전에 C-Level 등 의사결정권자에게 승인받는 최종절차가 있기에 결국 Output은 다양한 형태의 ‘보고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는 실무자가 곧 의사결정권자이기에 별도의 보고서는 필요 없다. 정보가 취합된 비정형화된 회의 Material이 존재할 뿐이다. 해당 자료를 토대로 관련 실무자들이 모여서 전략 방향에 대해 회의를 진행하며, 제한된 정보를 토대로 빠른 의사결정을 도출한다.
제한된 Resource, 빠른 의사결정의 필요성 등을 고려한다면 상기에 기술된 스타트업의 전략 수립 방식은 최적의 방법일지 모르나, 대기업의 전략 수립 방법론에 비하면 잘못된 의사결정이 나올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취합된 정보량도 부족하고, Logic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 제 1가 치는 빠른 Action이며, 빠른 Action을 통해 시장의 Feedback을 취득하고, 이를 통해 전략을 빠르게 수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모든 스타트업 구성원들은 느낄 것이다. 다만, 스타트업도 초기 단계를 넘어서 점점 조직화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면 다른 방식의 전략 업무를 고민해야 한다. 조직이 비대해질수록 새로운 Execution으로 연결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스타트업 성장통” 기간에는 전략 수립 업무가 대기업식으로 획기적 변화가 이루어질 확률이 크다. 해당 시기에 스타트업 관리자들이 고민하는 큰 Agenda 중 하나인 “대기업과 같은 비효율성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도 전략 수립 업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다양한 조직의 전략 수립 부서에 근무하면서 전략 수립 업무를 “탁상공론”으로 폄하하는 목소리를 자주 접하였다. 그러나 큰 방향성 없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큰 Risk만을 야기할 뿐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많은 기업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베트남 축구를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은 키 작은 베트남 선수들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동력과 점유율 축구라는 새로운 전략을 도입하였다. 새로운 전략에 맞게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들을 선발하였으며, 선발된 선수들을 훈련하였다. 이처럼 전략이란 채용이라는 기업 운영의 시작부터 매출 발생이라는 기업 운영의 끝단까지 모든 부분에 걸쳐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수행한다. 글로벌 시장을 석권한 삼성전자 반도체의 D램, 디스플레이의 OLED 사업에서 전략이 없었다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탁상공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략을 실행해야 할 때 리더의 결단력이 중요하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을 통해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중대한 전략 결정을 내리는 데는 강한 의지가 요구된다. 전술은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전략에서는 자신과 타인의 의혹, 여러 주장과 관념, 때 아닌 후회 등이 일어날 여지가 많다. 또한 전략은 전술과 달라서 전체 상황을 육안으로는 절반도 관찰할 수 없음으로 모든 일을 예상하고 추측해야 한다. 따라서 신념도 그만큼 약해진다. 그 결과 대부분의 장군은 행동해야 할 때 의혹에 빠져 꼼짝도 못하게 된다.
“기업 운영에 있어 리스크를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성공을 위해서는 적당한 규모의 리스크는 필수적이다. 리스크를 발판으로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귀 기울여보자.
Written by 이홍석
Edited by 조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