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귀한 곳에 누추한 나 같은 사람

by 수수진


늘 책을 끼고 사니까 스스로 다독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는 개인의 취미이자 습관 같은 거라서 누구나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글자는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라 책을 읽는 사람은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은 사람을 지성 있는 생명체로 바꾼다. 생각하는 인간만큼 강력한 존재는 없다. 모든 인간이 그런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오직 읽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힘'. 나는 육체적인 체력뿐만 아니라 마음의 체력을 키우기 위해 늘 책을 읽는다.


누구 하나는 죽어야 읽을 맛이 나는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르포도 읽는 편이고, 어렵지만 철학서를 읽을 때도 있다. 신앙의 힘이 필요할 때는 기독교 도서를 읽으며 마음을 다 잡을 때도 있고, 가끔은 사회 과학 도서도 읽는다.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는 코로나에 대한 보고서를 읽기도 한다.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다가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과부하된 기분이 들 때는 에세이를 집어 든다. 무라카미 하루키 팬 중에서도 소설보다 수필이 더 좋다는 사람이 많은데 나도 그중 하나다. 일간 이슬아는 기다렸다가 구독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하고, 최근에는 한수희 작가의 책을 재밌게 읽었다. 허지웅 작가의 에세이도 매우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김하나 작가의 에세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한 책이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좋은 에세이가 참 많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게 늘 잘 들어주던 은이 언니, 지금은 미국에 있어서 연락이 많이 뜸해졌지만, 언니는 안다. 내가 얼마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를 말이다. 글을 쓰며 언니 생각을 하니 그리운 감정이 불쑥 올라온다. 글은 사람을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깊이 느끼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 또한 새삼스럽게 경험하고 있는 지금이다.


그림 작가가 글 타령만 하고 있다. 그렇다. 사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글로 표현하는 일이다. 내 삶을 꾸준히 글로 기록하고 싶고, 나아가 글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 평생 글만 쓰고 사는 게 내가 꿈꾸는 미래다. 많은 작가들이 소셜 플랫폼을 통해 책을 넘어선 소통을 하고 있어서, 내가 꿈꾸는 글쟁이의 삶을 미리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의 미래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며칠 전에는 기분 묘한 일이 있었다. 유명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봤다. "누추한 강의실에서 저를 만나는 것도 괜찮으시다면, 마스크로 가려진 제 모습도 괜찮으시다면, 백화점 홈페이지의 귀찮은 회원 가입도 괜찮으시다면, ~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소규모 강의 모집을 위한 게시글이었다. 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하는 나로서는 너무 깜짝 놀라서, 아니 당황스러워서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어보았다. 누추한 강의실, 누추한 강의실, 누추한 강의실...


늘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면 담당 매니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어쩜 공간이 이렇게 조명도 밝고 쾌적할까요." 문화센터 강의실은 실제로도 다른 강의실에 비해 꽤 쾌적한 편이다. 특히 새로 지은 백화점은 잘 만든 카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깔끔하고, 문화센터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해 화장실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누추한 강의실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실제로 백화점 문화센터 공간이 누추하다는 게 아니고, 평소 본인의 무대보다 다소 작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분은 티비 출연에, 대규모 강연을 하는 그야말로 누구나 아는 유명 작가이기 때문에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실이라는 장소는 독자를 모시기에 지극히 작은 규모인 게 사실이다. 실제로 유명 작가에게 문화센터 같은 장소는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결론은, 누추한 강의실이라는 말은 어떤 경지에 오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지극히 겸손의 표현이다.



나도 언젠가 독자를 누추한 공간이 아닌, 멋들어진 장소에 초대할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겨우 정원 10명을 채우기 급급해 가끔은 조바심을 내기도 하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상황이 언젠가는 나아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쭈글해지고, 막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번쩍번쩍한 문화센터 강의실의 깔끔함에 누추하다는 단어는 감히 떠올릴 수도 없다. 실제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누추한 건 나지, 장소가 아니다. 나를 찾아주신 백화점 문화센터 담당자에게도 고맙고, 모집 글에 반응해 주시는 분들에게도 고맙다. 실제로 수업에 참여해 잘 들어주시고, 후기까지 남겨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 이상의 감동을 느낀다. 무명의 작가인 내게는 모든 자리가 귀하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그런 마음일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규모이든지 나를 찾아주신다면,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감사로 채우고 싶다. 지금도 이렇게 귀한 곳에 누추한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귀한 사람들이 누추한 내 글을 읽고, 응원의 댓글도 남겨준다. 이 정도라면 이미 내 꿈을 이루고도 남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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