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와 김숙의 비밀 보장 329회에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 상담이 나온다. 고민을 상담해 온 청취자는 여성이고, 본인은 주변에 남자인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그 친구들이 하나 둘 연애를 하게 되면서 관계가 멀어져 고민이 된다는 사연이었다. 나도 어릴 적에는 남자인 친구들이 참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동생과 워낙 친하기 때문에 동생의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남자 모임에도 잘 어울리고, 가끔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고 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연애 수준을 넘어서 결혼한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친구들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꼭 남자라는 성별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여자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삶의 관심사가 아예 달라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멀어지게 된다. 교회 공동체 같은 경우, 결혼을 하면 청년이 아니라 장년(성인)으로 소속이 바뀌게 되는데, 그만큼 결혼은 한 인간의 소속이 달라질 만큼의 큰일이다.
위에 언급한 사연을 상담해 준 곽정은씨의 말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남자 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하고 싶은 사연자의 마음은 잘 알지만, 만약 여자 친구가 두 사람의 관계를 불편해한다면 기꺼이 거리를 두는 것 또한 우정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여자 친구들이 느끼는 질투는 무시하고 나는 나대로 우정을 유지하는 게 어쩌면 본인이 갖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삶은 강물과 같은 거라서 자연스럽게 흐르다 어딘가에서 새로이 만난 사람들과도 충분히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반드시 우정이라는 게 시간에 비례하는 건 아니니 또 새로운 우정을 찾아보라는 조언이었다. 우정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개념이었다. 나는 당연히 우정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멀어진 사실을 생각하면 늘 서운함을 느꼈다. 일부 친구들에게는 내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도 있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면 더 멀어진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왕 맺은 관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대로 둘 수 있는 게 어른의 삶이다. 강물처럼 흐르다 서로의 물길이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게 우정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강물을 바다를 향해 간다. 어떻게 흐르더라도 결국엔 바다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바다의 모습으로 만날 거다. 서운해할 것도, 미안해할 것도 없이 그냥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 다시 만나면 더없이 반가운 거다. 혹여나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과거의 시간을 함께한 것만으로 충분히 고맙다.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 자체로도 좋다. 인간관계는 어렵고 복잡하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참 단순하다. 앞으로 남은 삶은 이런 태도로 우정을, 그리고 인간관계를 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