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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Nov 05. 2021

허구한 날 잠옷 바람으로 좀비처럼 사는 사람

"작가로 산다는 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는 삶이니까." 네이선 파울스는 한숨을 푹 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작가는 허구한 날 좀비처럼 살아야 하거든.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리된 삶이지. 고독한 삶. 하루 종일 잠옷 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식어빠진 피자 조각이나 씹으며 살길 바라나?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에 눈이 상하고, 대화 상대라야 기껏 머릿속으로 상상해낸 가공인물들뿐이야. 그 가공인물들이 자네를 미치게 만들지. 게다가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겨우 한두 문장을 써냈는데 독자들은 단 일초도 거들떠보지 않고 시큰둥해하지. 작가의 삶이란 바로 그런 거야." -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기욤 뮈소



기욤 뮈소 소설의 주인공 네이선 파울스는 작가의 삶에 대해 위와 같이 말한다. 소설은 그저 그랬지만, 이 문장이 문신처럼 내 마음에 남았다. 요즘은 그림 작가로 사는 삶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 없이 느껴진다. 네이선 파울스가 말한 것처럼 하루 종일 잠옷 바람으로 좀비처럼 사는 게 정확히 매일의 내 모습이다. 팬데믹 전에는 그나마 고정적인 강의가 있어 인간다운 모습으로 바깥 외출도 했는데, 2020년 이후로는 거의 외출이 없다. 이제 강의까지도 모두 온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온라인 강의가 있을 때 다림질도 하지 않은 셔츠를 꼬깃꼬깃 걸쳐 입고 하의는 여전히 잠옷 차림인 채로 세미 잠옷 좀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인지라 세련된 조합의 색깔, 그럴듯한 사진을 팔아먹는다. 자연스럽게 나의 삶 자체도 그럴 것으로 예상하겠지만, 실제로는 목 늘어난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를 주워 입고, 가끔은 오후 내내 세수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보내기 일쑤다. 그림 작가의 삶이란 그렇다. 그래서 그나마 노력하는 부분이 주 3회 수영장에 가는 것인데, 덕분에 매일 씻고, 바깥출입을 할 수 있다.



어쨌든 작가의 삶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처럼 고상하거나 깔끔하지 않다. 거기다 근육통은 또 얼마나 심한지, 뒷 목은 늘 저리고, 손목 터널 증후군에 심한 경우는 어깨에 쥐가 날 때도 있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현대인이 가진 증후군은 모두 가지고 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작가의 삶은 단점이 참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상쇄할만한 장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알람 없이 산지 벌써 4년 차, 이거 하나만으로 모든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특히 저혈압으로 아침에 눈 뜨는 게 힘든 나에게는 이것 하나만으로도 기꺼이 작가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늘 의욕이 넘치고 활기차니 당신도 작가의 삶을 꿈꿔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은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그런 소리를 하면 거짓말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기록하기로 약속했으니 있는 그대로를 적는다. 하지만 나 같은 작가만 있는 건 아니다. 늘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이 얼굴을 닦고, 조깅으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작가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으로 인해 성실하고 규칙적인 작가의 삶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나. 나는 그냥 타고나길 게으른 거다. 굳이 다른 작가의 문장까지 준비해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도 없다. 게으른 삶에 온갖 정당성을 갖다 붙여 포장하려는 게 이 기록의 최종 목적일지도 모른다. 근데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2018년도에 만든 독립출판물 <수수한 드로잉북>에 독자가 남긴 리뷰가 기억난다.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준, 그래서 고마운 책" 수수진이 작가가 된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조금도 대단하지 않아서 아니 너무 부족해서 보기만 해도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그러니 오늘 좀 대충 살았다고 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매일 잠옷 바람으로 좀비처럼 사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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