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수진 Jan 01. 2022

마음을 퍼 주고 싶어


'혼네'의 노래 모든 가사는 낯간지러운 사랑 이야기가 가득하고, 그림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시간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 분명 사랑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귀에 찰싹 붙는다. 혼네(HONNE)야 워낙 많이 알려졌으니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자면, 일렉트로닉과 신스팝 장르를 다루는 영국의 2인 남성 듀오다. 혼네는 일본어로 '진실된 감정'이라는 뜻이라는데, 한자를 보니 本音(본음)이라고 되어있다. 본심에서 우러나온 소리. 파란 눈의 두 남자가 '본심'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정성 있는 음악을 다루고자 혼네라 이름 지었음이 분명하다.


최근에 발간한 에세이 <나는 알람 없이 산다>의 두 번째 챕터에 그들의 음악에 대한 언급이 있다. 'Day 1'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가지고 쓴 글인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영원히 당신과는 1일이었으면 좋겠다는 그 가사를 하염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을 적었다. 그와의 Last day에 Day 1을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그와의 마지막이 모든 사랑의 마지막은 아니니까, 그래서 이 노래를 최선을 다해 귀에 담고, 풀 죽어 있는 나를 있는 힘껏 안아줬던 것 같다. 그 노래를 우연이라도 들으면 아직도 괜히 기분이 묘하다.


오늘은 혼네의 Free love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사랑 노래를 가지고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한 세계와 다른 세계가 만나는 것과 같아서 만남과 헤어짐은 덩치가 크고 무겁다. 이 정도 되면, 가벼운 만남을 가벼운 것으로 정리를 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그럴 수가 없어서 혼네의 Free love를 크게 틀었다. 그에게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공짜인 적이 없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공짜로 마음을 퍼 주고 싶은 적도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가끔은 내 마음이 바다 같고 하늘 같아서 마음껏 퍼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는 나를 철저히 학습하게 하고, 이미 많은 대가를 지불한 경험과 지식이라는 안경을 통해 상대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색안경, 나는 색안경을 똑바로 쓰고 상대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주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그간 디벨롭한 색안경을 제대로 고쳐 끼고 바라본 그 사람은 과거 너무 힘들었던 여러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첫 번째는 내가 하는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두 번째는 그를 때때로 잠식하는 무기력이다. 게으른 것과 무기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라, 그것에 한번 빠지면 낮과 밤의 경계 없이 온통 어둠뿐이다. 왜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느냐고 스스로 물을 때도 있는데, 나에게 먼저 말 걸고, 관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인 걸 어떻게 하겠나. 그럼 먼저 다가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난들 안 해봤을까? 다들 걸음아 날 살려라 내 빼더라. 어쨌든 그에게 도저히 노력해도 안 될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두 번이나 보냈다. 처음은 없던 일로 하자던 그의 말에 설득당해 다시 관계를 이어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나 어쩔 수 없다. 종지부를 찍었다.


Closer, 종지부를 찍다. 영어 단어 중 참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꼭 관계에서뿐만 사용되는 개념은 아닌데, 난 연애와 사랑에서 쓰일 때의 이 단어가 참 좋다. 그냥 헤어지는 게 아니라 이별 자체에 아예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것, 그래서 다시는 이별이라는 결정을 번복할 수 없게 만드는 강한 의지가 들어간 단어. 나는 이 단어를 그의 손에 꼭 쥐여주면서 그래도 즐거운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비록 Free love의 가사처럼 내 사랑을 마음껏 퍼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한 번쯤 그래 볼까라는 생각은 하게 만들어줬던 그런 만남이었다. 나는 실컷 사랑하고 싶은데, 내 사랑을 공짜로 가져갈 사람이 없다. 밥도 커피도 내가 사고, 무려 직접 운전해서 데려오고 데려다 줄 수도 있는데, 이렇게 모두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없다. 정말 없는 걸까 아니면 색안경이 문제인 걸까? 과거의 만남과 비교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마음껏 퍼줄 수 있는 사랑, 과연 가능한 걸까? 아무래도 힘들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혼네의 Free love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 혼네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서 노래로 표현한 걸지도 모르지, 지금 내가 그에게 다 하지 못한 말을 글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