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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Dec 28. 2021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


최근에 인스타그램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썼는데, 많은 분들이 리그램과 저장을 해주셨다.




정말 명함 한 장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누구나 아는 회사 로고 하나면 나를 쉽게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얼마나 많은 설명이 필요한지 모른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수수진은 필명이고 프로젝트158은 뭐냐면 어쩌고저쩌고… 근데 구구절절한 지금이 명함 한 장 보다 훨씬 귀하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나라는 인간으로 충만하게 사는 지금 이 순간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정규직만 되면 좋겠다, 결혼만 하면 좋겠다, 대학만 가면 좋겠다… 얻고자 하는 타이틀이 참 많다. 하지만 그런 건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순간을 충분히 사는 사람만이 ‘증명’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한 번쯤은 이런 삶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 그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 그건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누가 물으면, 구구절절 설명이 많이 필요해서 오히려 흥미롭고 신나는 삶, 이게 바로 나의 삶이다.






이런 글을 쓴 이유는 과거의 나는 참으로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창작인으로 살면서, '증명'에 대한 요구가 동서남북에서 빗발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명함 한 장으로 쉬이 증명된 삶이었는데, 분명히 그런 삶을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다시금 나를 증명하고자 치열하고 처절하게 노력한 거다. 그깟 회사 안 다녀도 아무렇지 않다고, 그깟 결혼은 필요 없다고,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라서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불과 몇 년 전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증명하겠다."라는 말로 끝나는 문장이 수두룩하다. 왜 그렇게까지 증명하고 싶었나를 생각해 보면, 어딘지 모르게 분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분해서 내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기어이 밝히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만든 회사의 대표이자, 기획자이자, 마케터이자 모든 것이다. 그러니까 프로젝트158은 나의 회사가 되었고, 내가 만든 회사에 내가 매일 출근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에서 6시 사이에는 일을 하고, 가끔은 야근도 있으며, 주말 근무도 있는 그런 회사. 사장님 나빠요라고 하기에는 내가 사장인 그런 회사. 이 회사는 멋진 로고도 없고, 건물도 없다. 누가 대단히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내가 만든 내 회사에서 훨씬 많은 돈을 벌고, 무려 사장님이(라고 쓰고 '내가'라고 읽는다) 외제차도 하나 뽑아줬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만든 내 회사에 늘 고맙다.



과거의 나는 틀리지 않았다. 회사를 나와서,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때의 내가 옳은 선택을 했기에 지금의 삶은 매우 풍요로우며, 매사 반짝반짝 빛난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된 지금, 더 이상 나의 옳음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더 큰소리로 이것 보라고, 역시 내가 옳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증명의 필요성에 대해 오히려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과거 수없이 증명하고 싶었던 그 '옳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누가 나에게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물으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수수진은 필명이며 프로젝트158은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내가 대표로 있는 개인사업자라고 답한다. 게다가 인스타그래머이자 블로거일 뿐만 아니라 강의를 하는 문화예술 강사...라고 긴 호흡과 긴 문장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이 모든 설명의 가장 꼭대기에 존재하는 <이 세상에 자기 자신으로 충분히 존재하고 있음>이라는 문장. 길고 지루하고 구구절절한 설명 구석구석에 깃들어있는 이 문장이 내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제언이자 '옳음'의 실체다. 이어령 교수의 질문, "당신은 이 세상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존재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아니 그것 이상으로, 이 질문의 근본을 이해하는 것.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미 나라는 존재 자체로 모든 증명을 마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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