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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Jan 08. 2022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에게


형이상학을 늘 마음에 새기며 더 깊고 근본적인 걸 추구하려 노력하지만, 실제 사람들을 만나면 아주 가벼운 농담으로 장난치기에 바쁘다. 형이상학은 무슨, 드립력을 뽐내는데 여념이 없다. 도대체 나도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마디라도 빵 터지는 문장을 뱉고 싶어서 분위기를 살핀다. 그때 그냥 개그맨 시험을 칠걸, 아빠가 KBS 공채 개그맨 시험 보라고 할 때 진작 준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는 없어졌고, 연기에 재능도 없는 나다. 지금은 그냥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면 각종 농담을 하다가 결국 결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30대 중반 여성에게 있어 '결혼'이란, 단 한 번도 뜨거운 감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결혼은커녕 남자의 머리털 하나 만질 수 없는 처지에 있는 나는, 이런 상황을 더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냥 깔깔대고 웃고 나면 연애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압박이든 아주 가벼운 존재가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질문이 마음에 구석구석 남는다. 그 질문을 하나씩 꺼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답하며 나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최근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이 매우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프로그램의 인기에 이어 논란 또한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들끼리의 농담으로 "수진이가 나는 솔로에 나가면 대박"이라는 말을 했단다. 여태껏 단련한 드립력을 발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다 은근슬쩍 명언 제조기 역할에 책 홍보까지 곁들이면 제2의 여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결론이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나는 솔로> 제작진에 연이 있다면 살짝 연결해 주셔도 좋겠다. 어쨌든 최근 들어본 것 중 가장 웃긴 이야기였다.


한참 웃고 떠들다 생각해 보니, 솔로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혼자'라는 존재는 결코 완전한 형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짝>이니 <나는 솔로>니 하는 프로그램이 늘 인기리에 방영되고 동시에 출연자들의 됨됨이가 늘 도마에 오른다. 세상은 어떻게든 혼자인 사람을 둘로 만들어야 속이 후련하고, 그렇지 못 한 사람들, 혹은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가져야 할 일정 기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 대해 잔인하리만큼 아픈 평가를 쏟아낼 때도 있다. 다른 어떤 욕보다 "평생 혼자 살아라."라는 말이 어쩌면 가장 잔인한 말은 아닐까.


부모님은 늘 나의 연애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내가 이룬 개인의 성취가 혼자라는 현실 때문에 평가 절하된다는 망상에 시달릴 때도 있다. 실제로 자연은 짝을 이뤄 설계되었고, 그 설계에 적합하지 않으면 불완전한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에이섹슈얼(무성애자)이라는 개념이 새로이 떠오르고 있지만, 사회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인간사 제대로 밝혀낼 수 있는 진리가 있겠냐마는, 새로운 대안이 나오고 있어도 여전히 자연은, 그리고 자연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는 누구든 짝을 이뤄야지만 '완전'하다고 받아들인다.


그러한 주장에 따르면, 나는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완전을 꿈꾸지 않는다. 굳이?라는 생각이다. 역시 MZ 세대를 위한 글을 쓰는 작가답게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세태를 담고 있군요라고 한다면, 그건 그쪽이 판단할 몫이니 굳이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삶이라는 게 꼭 완전함을 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실제로 완전을 추구한들 완전을 이룰 수 없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다. 아무리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게, '관계'이자 사회학의 정의로 말하는 정치인데, 만약 지금 옆에 있는 사람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인간에게 주어진 삶에는 태어남과 죽음 외의 당위성이 없다는 기초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다. 짝을 이뤘든 짝을 이루지 않았든 자기 의지로 태어난 적 없고, 자기 의지로 죽은 적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 오롯이 혼자 와서 오롯이 혼자 가는, 그러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라 완전을 꿈꾸는 행위는 아름답지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본질을 잊는다면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다.



불완전한 사람아, 결혼을 했구나, 애가 있구나, 집이 있구나, 차가 있구나, 돈이 있구나, 명예가 있구나, 100만 유튜브 채널이 있구나, 베스트셀러 여러 권을 냈구나, 대통령이구나, 대기업의 수장이구나, 명곡이 있구나, 그래,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불완전한 사람아,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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