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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Jan 14. 2022

불안을 '기대'로 채워, 채워, 가득 채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는 늘 다양한 질문이 따른다. 부러움의 시선도 있지만, 동시에 "어떻게 저러고 사나..." 하는 걱정 어린 시선이 굉장히 많다.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니 일은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돈은 제대로 벌고 있는지... 그런 시선을 마주할 때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고 싶구나라는 걸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아니, 깎아내릴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 '안정적인 삶'이 종교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종교관으로 나를 바라보면, 불안이 가득한 삶이라 구제가 필요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안정감'이란, 우스꽝스럽게도 '월급'으로 정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가? 많은 프리랜서가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힘들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하는 걸 볼 수 있는데, 하마터면 나도 그렇게 생각해야 프리랜서라는 정의에 맞는 삶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월급이 없는 삶, 즉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삶은 불안이 가득한 게 아니라 반대로 기대가 가득한 삶이다.


최근 출간한 책 <나는 알람없이 산다>에 티끌처럼 모아서 태산을 꿈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티끌 주머니를 두 손 꼭 쥐고 있는 삽화가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라온 덕분에, 독자분들이 좋아하는 꼭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원고가 2018년도 후반에 쓴 글이었는데, 2022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도 티끌의 삶은 계속되고 있다. 그 티끌을 차곡차곡 모아서 좋아하는 책을 실컷 사 읽고, 먹고 싶은 태국 국수를 마음껏 사 먹는다. 친구들에게 밥 한 끼도 즐거이 산다. 월급은 여전히 없지만, 월급을 받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평안을 누리고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느냐 묻는, 안정적인 수입이 종교인 사람들에게, 반대로 묻고 싶다. 당신은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데 왜 불안합니까? 당신이 말하는 '안정적'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의식주는 어느 정도의 돈만 있으면 해결된다. 야만의 상태에서 오는 불안은 최저 시급을 기반으로 일주일에 40시간씩 일하면 해결되는 부분이라, 큰 질병이나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없다면 웬만큼은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종교인 사람들은 이 정도의 불안은 불안의 축에 끼워주지도 않는다. 그들이 믿는 '미덕'은 남들 만큼 사는 것, 그들이 말하는 '남들 만큼'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죽었다 깨도 알 길이 없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종교는 무조건 '안정적'인 걸 추구하라고 가르친다. 그냥 안정도 아니고 '안정적인 것'은 도대체 뭘까? 그들 스스로도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이 모호한 개념. '남들만큼 사는 안정적인 삶'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들만큼 살면 딱 그 정도밖에 못 산다고 생각했다. 서른다섯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남들만큼 사는 안정적인 삶'이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남들 하는 대로 살면 지루하고, 시시하고, 너무 똑같아서 견딜 수 없는 기분에 빠져 버리는데, 이런 나에게 "너무 달라서 힘든 부분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으면, 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싶다. 어쨌든 이런 나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서 불안정하게 더 많이 법니다."


예측 가능한 월급이 삶을 지탱한다고 믿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언제 어디서 돈이 들어올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삶,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기대되는 프리랜서의 삶. 나는 이런 형태가 안정적인 월급보다 훨씬 더 좋다. 평생에 이룬 것 중 가장 큰 성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불안을 내가 말하는 '기대'로 꾹꾹 눌러 넘치게 담아버린다. 물론 삶의 가치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서, 안정교(안정적인 삶을 종교라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급히 만들어 본 단어) 교인들에게 논리를 들어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본인들이 추구하는 삶과 다른 삶을 산다고 해서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는 건 꼭 말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본인이 가진 것을 들어가며, 타인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안해 보인다'라는 말은 감히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 걱정하는 척 깔보지 마라. 왜냐면 삶은 다 달라서 그만의 멋이 있는 거지, 다 같은 모양이면 아무 멋도 맛도 없다. 내 삶은 너와 다른 덕분에 멋있다. 그래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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