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158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개인으로 충분하고 충만하게 사는 삶도 있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프로젝트158의 대표로서 페이스북 비즈니스 커뮤니티에 초대받았고, 그 초대에 응하기 위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육하원칙을 기반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질문에 답하는 건 늘 유쾌한 일이다. 특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정돈된, '체계'에 가벼운 흥분까지 느끼는 나라는 사람은 그런 질문을 천천히 음미하며 답을 하는 게 참으로 즐겁다.
프로젝트158과 수수진, 모두 '나'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내'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가끔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영묘하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게 느끼는 기분도 비슷하지 않을까? 감히 페이스북에 코딱지만 한 개인사업자 프로젝트158을 비교하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지만, 규모에 관계없이 무엇인가를 창조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하나의 개념이나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감각'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프로젝트158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프로젝트158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겨우 사업자등록증 한 장으로 증명할 수 없는, 종이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존재.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기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말한 바가 있는데,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자동차 회사인 '푸조'를 예로 들었지만, 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기 위해 삼성을 예로 들고 싶다. '삼성'은 무엇일까? 삼성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삼성 로고? 로고는 이미지 파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표? 그렇다면 이재용 회장이 삼성인 건가? 이재용은 이재용이다. 삼성을 대표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삼성은 아닌 것이다. 삼성을 이루고 있는 조직원? 그들 또한 회사에서 고용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제품이 삼성인 건가? 삼성에서 '만든 것'이지 물건 자체가 삼성은 아니다. 갤럭시는 삼성에서 만든 휴대폰, 비스포크는 삼성에서 만든 가전이다. 하지만 삼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조직을 구성하는 삼성맨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공동체, 눈에 보이지 않고, 관념으로만 존재하지만 모두가 실체로 믿고 있는 것. 그 사실에 대해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창작자가 만드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하지만 개인이 만든 창작물에는 사회적인 합의보다 스스로의 동의가 중요하다. 창작물이 응당 존재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그 설득이 완전히 이뤄질 때에만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 설득의 끝에는 프로젝트158이 있었다.
프로젝트158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한 명의 작가로서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기 나같이 사는 사람도 있어요."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존재'. 나라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다. 개인사업자라는 말이 참 좋다. '개인', '사업자'. 물론 영세사업자라는 또 다른 이름을 동시에 갖게 될 수도 있지만, 개인으로 태어나 개인으로 충분히 살아본 사람만이 영세라는 단어의 무게를 안다. 굳이 알고 싶은 무게는 아닌데요? 하지만 이 무게를 아는 자만이 삶의 왕관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스토리의 주인공이 그렇듯, 역경과 고난 가운데, 극복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영웅'이 된다.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주인공으로 태어났지만 단 한 번도 주인공으로 살지 않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꼴이다. 자기 자신에게 끝내 큰 빚을 진 채 죽음을 맞이하는 삶이다. 이렇게 살다 죽을래요.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 삶에 주어진 단 한 명의 주인공으로, 이 무대에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제대로 존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