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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Mar 05. 2022

창세기부터 막히네

새해가 되면 늘 다짐하는 게 있다. 올해는 성경을 가까이하리라. 작심삼일은커녕 한 시간도 지속되지 않는 이 다짐을 수십 년간 반복하고 있다. 아 물론 물리적으로는 늘 가까이하고 있다. 책상 한 켠에 성경이 묵직하게 놓여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펼쳐서 읽는 날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1년 365일 가운데 열흘을 겨우 채울 정도다. 한번 완독한 책을 다시 펼쳐보는 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거의 없으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열 번 남짓이면 자주 펼쳐본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성경이란 일반 책과는 엄연히 다르다. 성스러운 글자이자 계시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절대적이고 유일한 권위를 가진 책이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면 응당 성경을 매일 읽어야 한다. 영어로는 Daily bread라는 말로 불리며 이는 매일 먹는 빵이고, 우리 말로는 일용한 양식으로 불리는 성스러운 책,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크리스천의 태도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 있어서 기독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성경에 대한 크리스천의 접근과 태도를 설명해야 한다. 의심하기로는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활자 중독일 거다. 아니면 활자 중독인 사람들이 기독 종교에 잘 빠질 수도 있고, 어쨌든 성경을 가까이 두고 항상 읽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다.




하지만 성경이 중요하다는 걸 너무도 많이 듣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부터 막힌다. 창세기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이전에 성경은 여러 개의 책으로 이뤄져 있다는 걸 설명해야겠다. 신학은 철학보다도 오래된 학문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설명이 절대적일 수도, 전문적일 수도 없지만, 지난 30여 년간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귀동냥으로 얻은 지식을 슬슬 풀어보자면, 일단 성경은 메시아인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구(옛 것)와 신(새로운 것)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과 신약이라고 불린다. 구약은 총 39권의 책으로 되어있고, 신약은 27권으로 되어있다. 총 66권의 책을 하나로 모은 게 성경이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는 게 힘이 들 수밖에 없다. 66권의 책 모음집이라니. 게다가 오래전 말로 쓰여 가독성마저 매우 떨어지는. 어쨌든 그중 첫 번째 책이 창세기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태초를 창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냥저냥 읽다 보면 읽을만한데, 문제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담과 하와의 행복한 시절은 가고 뱀의 유혹에 못 이겨 선악과를 따 먹은 사건. 여기서부터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이런저런 짜증이 따른다. 이 답답한 커플 때문에 인류 전체가 죄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늘 아담과 하와에게 불만이 많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우겨우 노아의 방주 사건까지 멱살 잡혀 왔는데, 평소라면 그냥 읽고 넘어갔을 노아의 사건이 의외의 지점에서 나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노아의 방주 에피소드는 하나님이 비를 내려서 물로 세상을 심판한 사건이다. 노아를 비롯한 그의 가족 구성원, 지상에 있는 모든 동물이 짝지어서 커다란 배에 올랐고, 이후 40일 동안 밤낮없이 내리는 비에 많은 사람들은 화를 면치 못하고 죽는다. 이걸 읽는데 문득, 그럼 심판 때 바다에 있는 생물은 어떻게 됐을까? 하나님은 바다 생물은 건드리지 않으셨나 보네. 이 질문이 머릿속에 자리를 펴고 드러누워버린 이후 다른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또 창세기에서 막혔다. 성경을 덮었다.





나는 이 질문을 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왜냐면 이 질문을 무심코 던진 그날 저녁, 혼자 영화관에 갔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상영하고 있었다. 한때 혼자 영화관 가는 게 제일가는 취미였던 시절이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다가 먹으면서 보는 걸 참 좋아했는데 그날도 아마 1955버거 세트를 사가지고 영화관에 갔던 것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동명 소설 원작으로, 파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재정난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결국 화물선에 동물을 실어 캐나다로 떠난다. 그 과정에서 배가 난파되고, 구명선에는 파이와 호랑이만 남는다. 파이는 살아남기 위해 맹수와 끊임없는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상미도 좋아서 정신없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표류하는 인간 파이와 동물 호랑이가 더 이상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어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는데, 그때 파이가 겨우겨우 구명선에서 낚시 도구를 발견한다. 종교 문제로 살아있는 생물을 먹지 않는 파이는 신께 눈물로 기도를 올리고 물고기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낚은 물고기를 호랑이에게 먹여 그 또한 살린다. 나는 어이없게도 이 장면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노아의 대홍수 시절 바다에 있는 생물은 어떻게 됐냐고? 이렇게 먹이로 쓰였다. 파이와 호랑이가 생사를 눈앞에 두고 먹었던 물고기는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과 동물을 먹였던 그 물고기였던 거다. 이 장면을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하찮은 나의 질문에 신은 친절하게 답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었다.





그 후로 성경이 쭉쭉 읽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여전히 창세기부터 막히고, 다른 책을 펴도 그다지 잘 읽히지는 않는다. 제대로 외우고 있는 구절 하나 없는 그런 사람임과 동시에 늘 질문과 불평, 불만이 많은 크리스천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신은 우주를 지은 조물주임에도 불구하고 나같이 작은 사람의 질문에도 일일이 신경을 쓰는 분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길래 이런 하찮은 사람을 챙겨 보호하실까. 사소하고 어이없는 질문을 퍼부어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친절한 언어로 답하는 따뜻한 마음과 사랑. 대홍수로 인류를 싹 쓸어버리는 무서운 존재임과 동시에 물고기로 사람과 동물을 먹이는 세심한 분. 나는 내가 겪은 경험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랑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한다. 정작 나는 하나님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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