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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Feb 12. 2022

자본주의에서 잘 살고 잘 사는 법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은 역사가 그리 깊지 않은데도 마치 오랜 속담처럼 관용어로 쓰이고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군가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상대가 부러우면 응당 패배자가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유튜버 중 한 명은 현대 사회에서 잘 산다는 말은 상대적인 거라 내 주변 보다 잘 사는 게 진정으로 '잘 사는 삶'이라고 정의 내렸다. 정리하자면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삶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거다. 그래서 반드시 부동산을 소유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슬프지만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본인은 주변보다 잘 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살기로 했다는 말로 영상을 마무리했다. 나는 여기서 '슬프지만'이라는 단어에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슬픔을 느낀다는 건, 본인이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지 않다는 거구나. 슬픔을 느끼는 그의 태도에 오히려 한숨 놓을 수 있었다. 그래, 자본주의가 주장하는 수많은 제언 앞에서 사람들은 아직 슬픔을 느끼는구나. 부동산 유튜버 마저도 슬픔을 느끼는구나.



슬프지만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고, 나아가 사회의 부조리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보다 잘 사는 게 자본주의 시대에서의 '잘 사는 삶'이라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을 돌아보면 사랑하는 친구들 밖에 없다. 나는 친구들보다 '더' 잘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친구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 혼자서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삶이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홀로 일하는 프리랜서인 나조차 그 무엇도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시각 예술 작업을 하는 나를 중심으로 보자면, 전체 프로젝트를 만들고 운영할 기획자도 필요하고, 재정을 집행하는 회계도 필요하다. 기획자가 함께하고 있는 팀원이 있다면 그들의 의견도 매우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완성된 그림을 보아줄 사람들. 결국 무슨 일이든 인간으로 이뤄진 작은 규모의 사회가 필요하다.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공동체로 숨 쉬는 인간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잘 사는 데 인생의 목표를 갖고 살아간다면, 그거야말로 불행 중의 불행이 아닐까. 왜 불행을 목표로 삼아 아등바등하는지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도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한량처럼 부동산 따위는 잊고 테레비나 보라는 말이 아니다. 물질을 갖고 싶은 목적이 다른 사람보다 잘 살기 위함이라는 사고방식은 너무도 아슬아슬하다. 건물 몇 채를 가지고 있어도 영원히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유튜버를 통해 생생하게 목도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결코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남들보다 더 잘 사는 삶이 행복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적어도 제 주변에는 한 사람도 없도록 저와 제 친구들을 축복해 주세요."



그럼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물질 중심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부동산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 집 마련의 꿈, 내 집 마련의 목표도 아니고, '꿈'. 집을 갖는 건 이미 모두의 '꿈'이 되었기 때문에 집 한 칸, 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마련하는 게 미덕이다. 재테크, 정말 중요하다. 나도 주식을 하고, 요즘은 가상 화폐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의 목적이 남들보다 더 잘 사는 데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자족하는 삶'을 살라고 말했다. 자족하는 삶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다. 스스로의 만족은 결코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 지독하게도 어렵다.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며 끊임없이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온전한 만족을 발견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반면 타인의 삶을 기준으로 삼는 삶은 너무도 쉬워서 누구나 은연중에 품을 수 있다. 막말로 지인이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으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채를 갖겠다는 너무도 단순한 계산 방식으로 행복을 저울질하며 사는 삶. 이런 계산 방법을 기준 삼아 사는 삶은 매우 쉽고 간편하지만 마치 수박의 겉껍데기만 핥고는 평생 그게 수박 맛인 줄 아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영혼의 충족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행복을 영원히 모르고 죽는 그런 삶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살지 않는 게 나은 거 아닌가? 그래서 인생이 어려운 거다. 쉬운 길이 훤히 보여도 늘 어려운 걸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자족을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런 시도는 할 수 있겠다. 내가 가진 수박을 썰어 조각낸 다음, 사랑하는 친구들과 마음껏 나눈 후, 달고 새빨간 과즙을 함께 배불리 먹는 것. 야 이거 정말 맛있다, 미쳤다 하며 수박과 더불어 시답지 않은 농담도 키득키득 나눠 먹는 시도와 노력. 상상만 해도 행복해진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내가 가진 수박을 제대로 썰어 나눌 줄 아는 삶인 것 같다. 혹여 내가 가진 수박을 보고 누군가 부럽다고 한다면, 기꺼이 썰어서 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는 것, 혹은 탐스러운 수박을 가진 사람을 기꺼이 부러워하며 당신이 가진 그 수박 좀 나눠달라고 즐거이 말할 수 있는 삶.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이 나눔으로 인해 함께 더불어 행복을 누리는 삶. 모두가 그런 삶을 꿈꾸다가 결국엔 정말로 이 세상이 하나의 큰 고당도 수박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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