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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Mar 18. 2022

정치라는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천국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사는 일이란 하나의 문제인데, 왜 문제인가 하면, 그게 정치라 그렇다. 정치는 사회고 사회가 정치라 인간은 결코 이 정치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자 최악의 한계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데, 김영민 교수님의 모든 책이 좋지만 특히 최근에 나온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가 가장 좋다. 뜨겁고 유쾌하고, 무엇보다도 재밌다. 다소 복잡한 사회학 개념과 정의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나같은 민간인이 읽기에 더없이 친절하고 좋은 책이다.


어쨌든 정치. 오늘은 정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무거운 주제라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정치를 주제로 삼다니 야 왜 이래. 정신 차려. 근데 여기에 종교까지 섞다니. 미쳤어. 미쳤어. 정치, 종교 이야기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그 사람' 같은 존재 아닌가? 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을 '볼드모트'라 제대로 칭하기 시작했을 때, 나아가 그 이름이 원래는 톰 리들이라는 걸 밝혀내고야 말았을 때, 그제서야 마법 세계의 시민들은 볼드모트에 대한 두려움을 대면하여 결국엔 승리한다. 그러니까 정치와 종교라는 금기 사항도 마찬가지다. 솔직하게 말해야 서로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일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오래도록 정의당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 정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가치에 맞닿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보의 가치는 매우 고귀하며, 인류의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반면 매주 일요일마다 나가는 교회에서는 정의당에서 개진하고자 하는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서명을 늘 진행하고 있다. 이 두 개의 극단적 간극 사이에 놓인 나 같은 신앙인은 차별 금지법 반대 서명에 이름을 적는 일은 결코 없지만, 동시에 이를 반대하는 종교의 마음 또한 이해한다.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이, 해결이 가능한 갈등보다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게 정치를 이해하는 길이다.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을 평생 가지고 살면 영원히 병든 사회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과거의 나는 사회가 회복 불능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안 보고 말란다 하며 제대로 쳐다본 적 없었고, 지금 나 한 몸 잘 살면 그만이니 다음 세대랄지, 지구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게다가 신앙인에게는 죽음 이후의 부활이 있으니 죽고 나서 다시 살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악한 사람들, 나중에 다 지옥에나 가라지. 나는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미디움 사이즈 흰옷 깨끗하게 차려입고 천국으로 훨훨 올라갈 거야! 오로지 나 하나 잘 챙겨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실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성경을 읽고, 더 깊이 신앙이라는 것에 들어가 보니 어쩌면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이라는 건, 천군천사가 환영하는 구름 위의 세계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물리적인 삶 가운데 이뤄야 할 목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물리적인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신이 김차주, 유선경의 DNA를 요리조리 섞어 김수진이라는 인간을 세상에 나오게 한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천국이란 대체 뭘까.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진작 최연소 박사 같은 명예를 달고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고 있거나, 적어도 교회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 나부랭이다. 그러니까 천국이란 것도 잘 모르겠고, 진보의 가치를 옹호하지만 가끔은 진보적인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혼란 가운데 그나마 지금 이 순간 천국을 상상했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건, 단 하나다. 보수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가 나란히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사회. 나는 이것이야말로 정치라는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천국이라 믿는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34). 신은 그런 존재다. 인류에게 천국을 약속한 신은 순진무구한 화평을 약속하지 않았다. 예수는 유대교 회당을 뒤집어엎었고, 몸 파는 여성들과 식사를 했으며, 삥 뜯는 세금 징수원의 집에 며칠을 묵었다. 지독하리만큼 진보적인 행위였고, 누가 봐도 왜 저럴까 싶은 행동이었다. 예수라는 새끼 눈꼴시어서 못 보겠다 생각한 사람들은 당시 보수의 가치를 옹호하던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당모의를 거쳐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해 죽여버렸다. 하지만 그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났으며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품에 품어 용서하고 사랑하며 지금은 성령이라는 존재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지금의 종교가 맡아야 할 역할이라 믿는다. 예수를 본받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속해서 품는 것. 물론 자주 인류애를 잃어버릴 수는 있어도 다시 주워 담으려는 노력이 지금의 종교와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다. 뭐 말처럼 쉽지는 않아서 그 역할을 하는 교회를 아직 못 본 게 아쉬운 점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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