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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Mar 24. 2022

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고 나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인간관계에서의 문제는 늘 여기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너 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고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그 사실로부터 말이다. 만약 너 같은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한두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예상 문제집을 사다가 미리 풀어보거나, 귀찮으면 답안지라도 슬쩍 훑어볼 수 있었을 텐데 너나 나나 매한가지로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처음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MBTI라는 성격 검사에 목메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아는 것 이상으로 상대를 알고 싶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모든 불안과 변수를 예측하기 위해 MBTI를 분석하고 공부한다. 하지만 같은 결괏값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모두의 지문이, 필체가 다른 것처럼 각기 다르다. 사람을 단순화해서 A, B, C, D로 나누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결코 불가능하다는 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싸가지를 가진 고유한 생명체로 살아간다. 결국 고유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직장 상사를 떠올렸을 때, 그가 단순히 '인간'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미학적인 감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저 저 인간 왜 저러나 싶은 마음부터 올라온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새끼 같은 사람은 그 새끼밖에 없어서 인간관계 좆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측은지심의 깊이도 달라진다. 사람이 가진 고유한 형질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기란 너무도 어렵다.



대 전염병 시대를 겪으며 작업실에 틀어박혀 인간관계를 거의 맺지 않고 살아보았다.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하기에는 타의가 90프로 가까이 된다고 봐야겠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커피와 빵을 나눠먹으며 강의를 했던 것도 이제는 과거의 낭만이 되었고, 미팅 마치고 함께 맥주라도 한 잔 기울였던 일도 이제는 없다. 모든 인간관계를 온라인으로 맺으며 정말 필요하고 정제된 언어만 사용하고, 감정 표현은 이모티콘으로 대신했다. 깔끔하다. 부모로부터도 독립했다. 특유의 가족 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도 없고, 돌발적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처할 일도 없다. 화상 회의 링크를 누르고 정해진 시간에 화면만 바라보면 그만이다. 그렇게 외부의 관계에서 오는 소음이 줄어드니 서서히 나와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저 일상에서 했던 일들이 객관화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는 행위에서 내가 나를 매일 씻기고, 밥을 차려 먹이는 행위로, 그 누가 나에게 어떤 간섭도 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나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정말 웃기게도 이전에 내가 남들이라고 말하는 혹은 사회라고 말하는 것은 그 실체가 모호하고, 외부의 모든 메시지를 스스로 가공해 내가 나를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너무 놀랐다. 세상 모든 걸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확실한 어휘를 가지고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 무엇도 실체가 없다.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낸 허구다. 내가 가진 모든 분노와 절망, 고민과 걱정 근심을 채에 담아 탈탈 털어내고 보니 결국 내가 나에게 준 상처였다. 미안하다. 무엇보다도 왜곡된 사회의 메시지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들이대며 위협했던 게 가장 미안했다. 그래서 Less makes things better 단순한 것이 뭐든 좋다. Love conquers all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메시지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와 내가 화해하는 지점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그림이 나왔다. 보기에 좋았고, 감탄이 나오는 그림들이다.



나는 요즘 부쩍 사람이 좋다. 각자가 가진 독특한 형질, 색채로도 표현이 안 되고, 언어로도 표현이 안 되는 아주 기묘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 알 수도 없는 존재가 만들어낸 허구를 현실이라는 이름의 렌즈에 왜곡이라는 도수까지 맞춰서 갖춰 쓸 필요는 없다. 더 이상 그런 안경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그간 쓰고 있었던 색안경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려고 한다. 결코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존재할 수 없다고, 돈과 명예와 권력 혹은 외모가 현실이자 가치라고 말하는 모든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 진짜 현실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의 두 눈뿐이다. 고유하게 오롯이 반짝이고 있는, 오직 너만이 가진 두 눈. 그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매일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것. 인생에 최선을 다한다는 건, 어쩌면 이것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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