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아. 근데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꺼내면 내가 현실적인 사고를 못 하는 거래. 그러니까 내가 너무 순진한 거래. 그럼 나는 말하지. 이 세상에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 한 명 정도는 필요한 거 아니냐고.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대화를 끝맺고 싶어 해. "그래, 너는 예술가니까." 뭔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나는 이 문장 앞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해. 이 말에 담긴 뜻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을 좇는 비현실적인 인간이라는 거야. 그래서 대화가 안 통한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한 게 "그래, 너는 예술가니까." 라는 말이야. 이 문장에는 모든 대화를 종결시키는 힘이 있어. 근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 가끔은 나도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슷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거든. 실제 입 밖으로 내뱉을 때도 있지. "걔 예술가잖아."
왜 우리는 유독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라 칭하는 걸까.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이 '다른 것, 별난 것, 혹은 비현실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싶지 않다는 말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예술가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싶은 거야. 하지만 진실이란 뭘까? 내가 그토록 원하고 믿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완전히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이 들어.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사유를 거듭해봐도 여전히 세상은 내게 너무도 아리송한 존재야.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선'을 믿어. '선'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타들어갈 것 같아서 목이 마른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 만약 이 세상에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엄마 덕분에 절대적인 '선'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어. 내 삶의 근본을 지탱하고 있는 신앙을 통해 절대적인 '선'을 숭배해. 매일 같이 그 존재를 느끼고, 체험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면서, 물려받은 신앙으로 매일 하루치의 삶을 살아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어. 동시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겠지.
엄마는 나에게 삶이라는 걸 부여한 절대적인 존재야. 나는 엄마의 몸에서 나오는 영양을 먹고 자랐고, 엄마의 육체를 통해 세상에 나왔어. 가끔은 이리도 작은 사람이 어떻게 나같이 큰 걸 낳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말이야. 그래서 고마운 마음도 들지만 동시에 조금은 원망하는 마음도 있다? 삶이 너무 버거워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거잖아. 마흔다섯에 엄마를 낳은 외할머니가 친구들 보기에 너무 늙어서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했지. 우리는 각자의 엄마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누구보다도 내가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는 거야. 감히 아빠보다도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어. 우리는 몸을 공유한 사이잖아. 엄마 뱃속에서의 기억은 조금도 없지만, 온 갖 신체 구석구석에 남아 늘 잘 때마다 엄마 뱃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려. 매일 밤 나는 엄마의 뱃속에 다시 들어가.
나는 예술가라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해. 예술가라는 건 비현실적이고 오글거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진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 거야. 대부분의 인간은 나 같이 살 생각도, 용기도 없으니 어쩌면 예술가라는 말은 내가 사회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칭찬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두 눈이 반짝이면서 어깨가 올라가고, 왠지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불쑥 솟아나. 엄마, 나는 누가 뭐라든 끝까지 사랑을 믿으며 살아갈 거야.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누군가가 설계한 거짓일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가끔은 바보 같은 삶을 기꺼이 선택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거야. 그런 나를 끝까지 응원해 줘. 우리의 남은 시간이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면 좋겠어.
엄마, 사랑해. 정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