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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Mar 30. 2022

지온, 아마도 산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나의 사랑하는 조카 지온, 세상에 나온 지 갓 100일이 넘은 작고 연약한 생명체 김지온. 고모는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알 수 없는 인류애가 솟아난단다. 조카에게 쓰는 편지에 인류애라는 단어를 쓰다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응, 맞아. 고모는 작은 것에 크게 감동하고 환호하며 과장된 표정을 짓는 그런 사람이란다. 우리 집안사람들에게는 그런 DNA가 있어. 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줄 곳 그래왔을 거야.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삶을 대했어.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만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깊게 경험하고, 감탄하며 신에게 진정한 감사를 올릴 수 있단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DNA에 '과장됨'이 내재되어 있는 게 참으로 자랑스러워.



지온아, 내가 어느 날 낮잠을 자는데 황당한 꿈을 꾸었어. 꿈에서 고모는 강아지 두 마리와 방 안에서 나른한 낮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지. 하지만 불쑥 내 방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지 뭐니. 큰 엉덩이를 하고 느릿느릿 내 방에 걸어 들어온 호랑이를 마주한 고모는 너무 놀라서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단다. 게다가 털은 아주 흰색이었어. 눈이 부실 정도로 흰 털을 가진 큰 호랑이었다. 다행히도 그 동물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어. 정말 안타깝지만 강아지 두 마리는 방에 두고, 고모만 살금살금 기어서 방을 탈출했단다. 방에서 나온 고모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 집에 호랑이가 들어왔어."라고 말했어. 너무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겨우겨우 입을 뗐는데 내 말을 듣던 엄마는 가볍게 웃더니, 집에 들어온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거야.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그래서 살짝 방문을 열어보니 그 호랑이는 강아지들과 잘 놀고 있더라고. 정말 개운했어. 그 낮잠은 고모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잠이었단다. 기분이 상쾌해진 고모는 로또를 살까 고민하다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가 꾼 꿈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이야기를 나눴어. 아마 너의 인생에 귀인이 올 건가 보다. 나의 엄마는, 그러니까 너의 할머니는 고모에게 그렇게 말했어.



그 꿈이 태몽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며칠 지나지 않아서야. 너의 엄마와 아빠가 가족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고, 나는 그때 꾼 꿈이 너를 상징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고모는 이전에 꿈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건 전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이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참 기이한 것이었단다. 그와 동시에 고모는 조금씩 깨닫게 되었어. 생명이라는 건, 단순히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 발생하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생명은 온 우주의 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고모는 지온이를 생각하면, 이 문장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 인간의 지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극히 겸손한 자리로 나 자신을 인도하게 된단다. 지온이는 존재만으로 고모라는 한 인간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어.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도록 지온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너를 내 품에 안았을 때, 고모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심란한 마음이 갑자기 눈 녹듯 사라지고 오직 너라는 아름다운 생명의 무게만이 내 품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만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경험했단다. 오직 지온만이 고모에게 줄 수 있는 감각이야. 너를 안을 때마다 나는 생명을 한 뼘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돼. 그냥 대충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진정성 있게 누리고 싶다는 생각. 너는 고모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그래서 더욱 생명력 있게 이 땅에 발을 딛게 하는 그런 존재야. 너는 정말 아름답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지온이가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기에 그 사실로 인해 매일의 일상에 충만함을 누리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지온, 사랑하는 지온, 서른다섯 살의 고모는 아직도 삶이 무어라 딱 집어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온에게 무조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꼭 말해주고 싶어. 물론 산다는 건 쉽지가 않아. 지온이가 다양한 소리로 불편과 괴로움을 표현하며 엉엉 우는 걸 볼 때마다 삶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우주의 신비를 경험하며 매일의 아침을 맞이해. 오늘도 지온이 일과를 마치고 눈을 감을 때,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라는 말로 하루를 마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지온을 위해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일 더 너를 사랑하는 것으로 고모는 고모의 역할을 다 할게. 늘 고맙고, 사랑한다. 



2022년 3월, 고모가 사랑하는 지온에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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