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포즈난

혼행, 감정에 솔직해지는 여정

by project A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구 담임 선생님은 그 시절의 내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말씀하신 적 있다. 그런 편이었나.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남들에게 싫은 티 잘 내지 않고 뭘 해도 남들보다 조금 더 덤덤한 편이었다.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조차 가장 많이 하는 말들 중 하나가 "다 괜찮아" 라면 말 다 했다. 언제서부턴가 감정을 뒤로 미뤄두는 게 자연스럽고 편해졌다. 그런 사람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두 달간의 유럽 여행, 일상과는 다른 환경 속에 홀로 던져지자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 솔직한 '나'의 모습은 낯설고, 조금은 부끄러웠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민망하고 부끄러웠지만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솔직한 '나'를 만나게 됐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감정에 솔직했다기보단 그저 처음 떠나게 된 혼행에 신나 있을 뿐이었던 시기를 지나, 낯선 곳에 대한 진심은 예상치 못한 때에 터져 나와버렸다. 여행에 이제는 슬슬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을 10일 차. 출국 이후 줄곧 독일에 있다가 처음으로 다른 나라_폴란드_로 넘어가던 날이었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봤었던 호그와트 열차 같은 좌석 배치_복도가 있고 6개의 좌석이 있는 칸들이 늘어서 있는_의 열차를 타고 평화로운 바깥 풍경을 구경할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나라의 첫 여행지를 소도시인 포즈난으로 잡아버린 게 화근이었을까. 한산한 역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영어와 비슷해 읽을 수라도 있었던 독일과는 다르게 문자조차 읽을 수 없는 폴란드어에 잔뜩 헤매다 겨우 찾은 출구에서는 구글맵이 말썽이었고, 여차저차 반대로 돌아가니 보이지 않는 출구에 한참을 이리저리 쏘다녀야 했다. 게다가 내내 맑기만 하던 하늘이 급속도로 흐려지더니 출구로 나가자마자 내리는 스콜까지. 구글맵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숙소까지 가는 법을 통 알려주지 않으니 짐들을 전부 끌고 걸어가야만 하는데 스콜이라니. 게다가 날까지 점점 어두워지자 여행을 시작하고서 처음으로 낯선 곳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걸려온 엄마의 안부 전화에 결국 두려움과 서러움이 폭발했고, 남들 눈을 신경 쓸 새도 없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쯤 하면 날씨가 나 **라고(험한 말) 굿하는 거 아니냐며 엉엉 우는 나를 옆에서 비를 피하던 외국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국이었으면 분명 조금 글썽거리다가도 서둘러 눈물을 그쳤을 텐데, 왜인지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여차저차 온갖 고생_흙탕물 웅덩이와 공사장 등등_끝에 숙소에 도착하고 또 엉엉, 밥 먹으러 가는 길에 담배를 피우며 길을 막고 있던 외국인들의 덩치에 겁먹어 그렁그렁. 한적한 소도시인 포즈난의 밤은 안 그래도 겁먹은 혼행 초보의 눈물을 불러일으켰다. 가로등조차 밝지 않았고, 구시가지로 가는 길목은 온통 펍으로 가득했으며 구시가지의 동상들은 유령의 집마냥 아래에서 비춘 옅은 조명 때문에 기괴하게만 보였다. 다음날 아침 잔뜩 긴장하며 마주한 낮의 평화롭다 못해 한가로운 풍경이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조금 민망하고,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이 웃긴 이 날을 기점으로 두 달간의 여행 내내 나는 펑펑 울고, 티 없이 웃고, 힘껏 우울해했다. 의지할 곳도, 의식할 것도 없이 오로지 혼자 한 여행_심지어 동행을 구한 적도 거의 없었던_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혼행은 결국 나에게 솔직해지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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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어둑한 소도시. 혼행 초보가 겁을 집어먹기엔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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