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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소피아 (1)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by project A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는 여행을 계속해 가고 싶은 건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저 추억으로 미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달간의 동유럽 여행에서도 두 도시만큼은, 정말 추억이라기보다는 악몽 으로 남아버렸다. 특별히 즐거웠던 기억도 없이 모든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던 날들을 보냈던 독일의 라이프치히와 불가리아의 소피아. 그래도 정말 웃을 일 하나 없이 힘겹기만 했던 라이프치히와는 달리 온갖 고생은 했어도 따뜻한 위안을 받고 떠날 수 있었던 소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 한다. 소피아, 만나서 즐거웠고 다신 보지 말자!





공포의 호스텔


63박 64일의 여행 동안 호텔부터 에어비앤비, 호스텔과 야간버스까지 정말 다양한 유형의 숙박을 경험했다. 그 중에서도 호스텔은 적당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개인 공간(이라 쓰고 침대라 읽는다)과 있어도 잘 쓰지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공용 공간이 있으면서도 에어비앤비 개인실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지갑이 가볍고 하루의 대부분을 떠돌아다닐 대학생에게는 안성맞춤인 숙박업소였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적은 예산 탓에 호스텔을 줄줄이 예약하면서도 호스텔에 대한 인식은 그닥 좋은 편이 못 됐다. 공포영화 <호스텔> 탓이었다. 슬로바키아의 한 호스텔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꽤나 잔혹한 영화는 부모님께 꽤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 숙소를 예약하는 내내 걱정을 금치 못하셨고, 덩달아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행히도 걱정과 달리 머무르게 된 호스텔들은 깔끔하고 안전한 편이었고, 처음 이용해 보는 혼성 다인실 숙소에도 금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소피아로 이동하던 그날도 시작은 평범했다. 문제는 해가 져갈수록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불가리아의 소피아로 넘어가는 길은 영 순탄치 않았고, 6시간이면 충분하다던 이동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문득 호스텔 생각이 났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너무 오래 전에 예약해둔 방이 몇 인실인지 궁금해 들어가본 호스텔 예약 사이트는 해당 호스텔을 더 이상 지원한다는 메세지를 띄웠고, 겁을 잔뜩 집어먹고 걸어 본 전화 너머에서는 전화선이 빠져있거나 더 이상 없는 번호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호스텔 예약 사기라도 당한 걸까,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잔뜩 겁을 먹었다 이내 체념하고 호텔을 찾아볼 즈음에서야 소피아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 때가 벌써 밤 9시, 이미 주위는 완벽히 깜깜해진 지도 오래였다. 보이지 않는 atm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호스텔이지만 확인을 위해 가보려 향한 버스정류장의 안내판은, 무려 키릴문자였다. 구글맵도 정류장 안내를 키릴문자로 해 주었으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그 와중에도 구글맵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꿋꿋이 영어로 안내를 했다. (구글맵이 두 달간 저지른 만행은 후에 주기적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아주 자기 멋대로다 이거지. 덕분에 정류장이 맞는지, 방향이 맞는지 어느 것도 알지 못한 채 버스에 올라타 영어가 통하지 않는 기사님만 한참을 붙들어야만 했다. 서로 알아듣지도 못하 말로 한참을 각자 할 말만 하다 실마리라도 잡으려는 요량으로 호스텔이 있는 거리의 이름을 외쳤다. 정말이지, 절대 잊지 못할 거다. Iscar(이스까르)!!!!! Iscar!!!!!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여주기 무섭게 도착한 정류장에 정신없이 캐리어를 챙겨 뛰어내리고 나니 눈앞에 보이는 건 깜깜한 골목길뿐. 골목을 밝히기엔 역부족인 희미한 가로등 몇 개만 놓인 아무도 없는 골목이라니. 심지어 이 나라 사람들은 죄다 바른생활 어른들 뿐인건지 가정집으로 보이는 주위 건물들조차 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래도 호스텔이 있는지 확인은 해야지 어쩌겠는가. 눈을 부릅뜨고 혼자서 온갖 험한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중얼거리면서 골목을 걸어들어갔다.


다행히도 호스텔은 그 자리에 있었고, 체크인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호스텔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시설이 노후한 건 둘째치고 이불에서 베드버그가 나올 것만 같았다. 매트리스를 들어 확인하고 약까지 뿌렸지만 이불은 도저히 덮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 살포시 개서 구석에 박아버렸다. 그리고 손을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의 상태는...정말 충격적이었다. 샤워부스에는 땟국물이 흐르고 먼지덩어리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바닥에는 벌레 시체인지 무엇인지 모를 것이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피해 어찌저찌 머리만 겨우 감고 나오니 현타가 찾아왔다. 하루종일 이어진 이동에 피곤해진 상태에도 마음 편히 눕지도 못하다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결국 호스텔은 2박을 예약했고 금액도 전부 지불했음에도 호텔을 예약하며 내일 카운터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체크아웃할 것을 다짐하며 청재킷에 몸을 우겨넣고 선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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