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한 번도 안 걸은 발바닥이네."
교회 모임에서 들은 얘긴데 갓난아기만 보면 발바닥을 만져보는 사람이 있단다. 아직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통통하고 보드라운 발바닥을 좋아해서 꼭 만져보는 거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싶다가도 어쩐지 좀 변태 같아서 듣고 넘겨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아기를 목욕시키고 바디로션을 발라주다가 우연히 아기의 팔꿈치를 살펴보게 되었다. 자고로 내 사전에 팔꿈치라는 것은 뻣뻣하고 쭈글쭈글한 것이거늘 그토록 동그랗고 반들반들한 팔꿈치는 처음이었다. 나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이라도 한 듯 목욕 후 신나서 바둥거리는 아기의 팔꿈치를 붙들고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팔 뒤꿈치 때 좀 봐라, 때!"
소매가 짧아지는 여름이 되면 '팔 뒤꿈치 때'는 엄마의 단골 잔소리였다. 유난히 팔을 괴는 버릇이 있던 나는 빨갛게 눌린 자국이 팔꿈치에 자주 나 있었다. 또 놀다가 넘어지면 꼭 팔꿈치가 까지기 일쑤여서 몇 번이나 딱지가 앉았다 없어진 자리가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런 팔꿈치가 자랑스러울 리 없던 어린 나는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물에 푹 불렸다가 이태리타월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박박 밀어 보기도 하고 바디로션을 왕창 발라보기도 했다. 어색한 순간에는 습관처럼 딱딱한 팔꿈치를 문질렀고 또래 남자애들을 볼 때면 제일 먼저 팔꿈치가 깨끗한지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못생기고 쉽게 지저분해지는 팔꿈치는 여름엔 무척 신경 쓰이고 겨울엔 마냥 안심이 되는 그런 존재였다.
"새 팔꿈치라니!
아기의 팔꿈치는 작고 동그란 데다가 깨끗하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그 순간 나는 학기가 시작될 때 새 공책을 앞에 두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에 부풀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쓴 적 없는 아기의 새 팔꿈치 앞에서 설렘과 희망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면 나는 정녕 변태일까.
아기가 크면 언젠가는 이 작고 보드라운 팔꿈치도 까지고 쭈글쭈글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 우리 아기가 정말 많이 컸구나." 하고 비로소 실감이 날 것 같다. 주책스럽게도 나는 벌써부터 그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그 보드랍고 반질반질한 것을 몇 번이나 거듭 만져보았다.
(변태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