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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Mar 21. 2019

아기의 팔꿈치

"어머! 한 번도 안 걸은 발바닥이네."


교회 모임에서 들은 얘긴데 갓난아기만 보면 발바닥을 만져보는 사람이 있단다. 아직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통통하고 보드라운 발바닥을 좋아해서 꼭 만져보는 거란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싶다가도 어쩐지 좀 변태 같아서 듣고 넘겨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아기를 목욕시키고 바디로션을 발라주다가 우연히 아기의 팔꿈치를 살펴보게 되었다. 자고로 내 사전에 팔꿈치라는 것은 뻣뻣하고 쭈글쭈글한 것이거늘 그토록 동그랗고 반들반들한 팔꿈치는 처음이었다. 나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이라도 한 듯 목욕 후 신나서 바둥거리는 아기의 팔꿈치를 붙들고 한참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팔 뒤꿈치 때 좀 봐라, 때!"


소매가 짧아지는 여름이 되면 '팔 뒤꿈치 때'는 엄마의 단골 잔소리였다. 유난히 팔을 괴는 버릇이 있던 나는 빨갛게 눌린 자국이 팔꿈치에 자주 나 있었다. 또 놀다가 넘어지면 꼭 팔꿈치가 까지기 일쑤여서 몇 번이나 딱지가 앉았다 없어진 자리가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런 팔꿈치가 자랑스러울 리 없던 어린 나는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물에 푹 불렸다가 이태리타월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박박 밀어 보기도 하고 바디로션을 왕창 발라보기도 했다. 어색한 순간에는 습관처럼 딱딱한 팔꿈치를 문질렀고 또래 남자애들을 볼 때면 제일 먼저 팔꿈치가 깨끗한지 확인하는 버릇도 생겼다. 못생기고 쉽게 지저분해지는 팔꿈치는 여름엔 무척 신경 쓰이고 겨울엔 마냥 안심이 되는 그런 존재였다.

 

"새 팔꿈치라니!


아기의 팔꿈치는 작고 동그란 데다가 깨끗하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순간 나는 학기가 시작될   공책을 앞에 두고 무엇이든   있을 것만 같은 기대에 부풀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번도 (제대로)   없는 아기의  팔꿈치 앞에서 설렘과 희망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면 나는 정녕 변태일까.


아기가 크면 언젠가는 이 작고 보드라운 팔꿈치도 까지고 쭈글쭈글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아! 우리 아기가 정말 많이 컸구나." 하고 비로소 실감이 날 것 같다. 주책스럽게도 나는 벌써부터 그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그 보드랍고 반질반질한 것을 몇 번이나 거듭 만져보았다.


(변태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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