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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Mar 16. 2019

크리스마스


북극의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지루한 비가 마침내 그치면 온 도시는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낯설고 요란했던 할로윈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 동네는 집집마다 옷을 갈아입느라 분주하다. 비석과 해골 장식이 난무했던, 가끔은 섬뜩하기도 했던 동네가 아기 예수님과 산타 할아버지로 순식간에 포근해지는 모습을 보면 그만 헛웃음이 난다. 그래, 이젠 다시 따뜻해져야 할 시간이다. 


이맘때면 집 근처 꽃 시장에서는 수백 그루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진열해 두고 판다. 오직 이 시즌만을 기다리며 길러진 진짜 나무들이다. 은은한 솔잎 향기를 품은 진짜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을 하는 것이 여기 사람들의 로망이란다. 자동차 지붕 위에 저마다 고심해서 골랐을 그 큰 나무를 싣고 달리는 모습이란 얼마나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가. 그러나 누구는 생각할 것이다. 나무 앞에 모일 사람들과 선물들, 웃음과 이야기들, 소망과 기도들. 그저 두꺼운 외투를 꺼내는 것 말고도 여기 사람들은 이 특별한 계절에 성실하고 부지런히도 반응하고 있다.


캐나다에 온 첫 해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를 낳았다. 병원에서 나와 그 핏덩이를 안고 집으로 오는 길에 눈이 내렸다. 엄마의 시간을 사는 동안 스탠리 파크의 크리스마스 열차나 크리스마스 마켓의 회전목마는 꿈도 못 꿨다. 두 번째 겨울에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행여나 다칠까 트리 대신 작은 리스 앞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가족사진을 찍었다. 세 번째 맞는 올해는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와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장면을 조심스레 꿈꿔본다. 문득문득 낯설고 외로워지는 이 곳에서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을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나도 가장 따뜻한 이 계절을 맞이해보려 한다.  



2018년 12월 <BAZ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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