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담당의사의 권유로 38주 0일 되던 날, 유도분만으로 낳았어요. 첫째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 별 생각이 없었어요. 병원에서 모유수유를 권하길래 시키는대로 했고, 모유가 잘 안나왔지만 육아책에서 신생아의 위 크기는 복숭아 씨 만하다고 하길래 나오는만큼만 먹였습니다. 아기가 잠을 많이 자길래 순한 아기구나 생각했어요.
출산 후 일주일이 지나 패밀리 닥터에 체크업을 하러 갔는데 닥터가 아기를 보자마자 바로 이머전시로 데려 가라고 했어요. 황달이라구요. (아기가 까무잡잡한 편이었는데 그게 황달의 신호인지 몰랐습니다. 참고로 엄마, 아빠 둘 다 피부가 새하얗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무지하기 짝이 없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제 막 엄마, 아빠가 된 사람들이었어요.
이머전시에 갔더니 바로 광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입원실로 안내를 받고 기다리는 동안 간호사가 59ml 짜리 일회용 분유를 들고 와서 아기한테 먹이는데 아기가 며칠 굶은 사람처럼 (실제로 며칠 굶은거나 다름 없었지요...) 허겁지겁 벌컥벌컥 원샷을 하는데 그 광경을 보고 남편과 저는 기겁을 하였습니다. 복숭아 씨만 하다면서요...
인큐베이터 같이 생긴 광선 치료통에 2.6kg이 채 안 되는 (출생 당시 무게보다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기가 홀딱 벗겨져서 기저귀와 눈 가리개만 쓰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저는 한참을 목놓아 울었습니다. 출산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돼서 제 몸도 성치 않았는데 하루 아침에 엄마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무서움이 한 번에 밀려왔고, 나 자신의 무지함과 미련함에 대한 원망, 아기에 대한 미안함이 사무쳐 그렇게 통곡의 밤을 보냈습니다. 당번 간호사는 광선 치료통을 붙들고 우는 저를 보고 당황스러워하면서 황달은 아시아 남자아기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라고 네 몸부터 돌보는게 좋겠다고 위로했지만 전혀 위로가 안 되었습니다.
이틀 동안 입원실에 있으면서 밤낮 할 것 없이 2시간 마다 유축을 했습니다. 그래야 젖량이 늘어서 아기를 충분히 먹일 수 있대요.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지 젖은 젖대로 아프지, 젖량도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았습니다. 밤새 울며 작고 비루한 나의 젖을 탓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신생아 육아라는 실전 무대에 던져져 혹독하게 엄마가 된 신고식을 치뤘습니다.
퇴원을 하고 며칠 간 분유를 보충하면서 모유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늘지 않는 젖량에 조바심이 나고 걱정이 되고 광선 치료통에 누워있던 아기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그냥 분유를 먹이고 빨리 통통하게 살찌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저의 생각으로, 의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또 당시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러 한국에서 오셔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셨는데 모유수유를 하면 못 먹는 음식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몇 년 만에 캐나다에서 맛보는 엄마 음식인데 참기 어려웠고, 매운 음식 먹고 모유수유해서 아기한테 아토피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 또한 의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또, 당시 책 번역일을 맡아서 진행 중이었는데 낮에는 아기를 돌보고 밤에는 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번역을 하는 생활이 이어지자 체력적으로 정말 지쳐갔습니다. 그 때는 내 커리어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쉽게 일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보다 더 미련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번역해서 번 돈은 분유 몇 통 사면 사라질 돈이었습니다. 모유수유를 하는게 경제적으로도 더 남는 장사였는데 그 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상황들로 인해 첫째는 완분으로 갔습니다. 포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게 아기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각자의 여건과 신념에 따라 내린 모든 부모님들의 결정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엄마는 잘 생각했다고, 오빠랑 너도 다 분유 먹여서 잘 키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5년이 훌쩍 지나 둘째를 낳았습니다. 그 동안 첫째 때는 없었던 육아템들도 생겼고 모유수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더군요. 한국 유튜브 채널에 모유수유의 장점을 소개하고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는 내용이 많았어요. 첫째 때는 모든 것이 처음이고 서툴어서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늘 있었어요. (이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첫째가 자라면서 아토피 증세가 있었고 작은 편이라 둘째는 모유수유를 다시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친한 친구가 완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저처럼 가늘고 말랐습니다.)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모유수유에 대한 의지는 점점 불타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