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출산 후 산후조리원도 없고 의지할 가족들도 없었어요. 첫째 때는 엄마가 한국에서 오셔서 도와주셨지만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둘째 때는 오지 못하셨어요. 마침 밴쿠버에 산후조리 출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인 업체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거금을 들여 2주 간 산후조리사 샘을 고용하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목적은 분명했어요. '모유수유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을 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시원시원하게 일 잘 하시는 산후조리사 샘을 만났습니다. 아침에 오시면 모유수유 도와주시고 분유보충도 해주시고 기저귀 갈기며 신생아 목욕이며 식사 준비도 산모 영양식으로 한상 차려주셨습니다. 간단한 부엌 정리도 해주시고 그 중 제일 좋았던 건 마사지였어요. 할렐루야! ㅠㅠ 숙련된 산후조리사 샘의 손길 덕분에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잘 굴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출산 후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도 젖이 충분히 돌지 않아 저는 매일 두 시간 마다 꾸준히 유축을 했습니다. 모유수유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얼마나 크레이지한 스케줄이냐면요, 신생아 직수 (직접수유)를 거의 한 두 시간 마다 30분~45분씩 하고 (처음에는 아기도 빠는 힘이 없어서 오래 물려요.) 아기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재우고 바로 유축을 15분하고 돌아서면 또 수유시간이 마법처럼 돌아옵니다. 이걸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계속 하는 겁니다. 제대로 잠을 못 자고 못 먹고 이렇게 며칠을 반복하면 '나는 그냥 소다' 라고 생각하는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래도 산후조리사 샘이 오시면 잠깐씩 쪽잠도 잘 수 있고 끼니도 잘 챙겨먹으니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거금 들인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젖량을 늘리려고 매일 가슴 마사지도 받고 (시퍼렇게 피멍이 들 정도로 받았습니다.) 사골국, 미역국 몇 솥은 거뜬히 먹은 것 같습니다. 미역국은 넣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는 다 넣어서 먹어봤다고 하면 될 거에요. (전복, 사골, 소고기, 연어, 황태, 아롱사태 등) 산후조리사 샘도 미역국 계속 먹으면 물릴텐데 이렇게 열심히 먹는 산모는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아기가 찾으면 언제든지 물릴 수 있게 거의 웃통을 까고? 지냈는데 부끄러운 것도 없었고 젖만 잘 나와준다면야 언제든지 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아기가 먹는 양은 느는데 젖량 느는 속도는 더디니 자연스럽게 분유 보충수유 양은 점점 늘었습니다. 아기가 양이 부족해서 울어 제끼기 시작하니 멘탈은 점점 약해졌고 응원과 지지를 보내던 산후조리사 샘도 은근히 분유 쪽으로 기우는게 감지됐습니다. 보충수유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묘한 신경전이 있기도 했어요.
"이번에 많이 못 먹은거 같으니까 60ml 탈까요?"
“음… 아니요. 우선 30ml만 주세요."
“아 네..."
(어색, 침묵, 정적)
산후조리사 샘도 제가 시원하게 분유로 갈아탔으면 일하기 편하셨을거에요. 분유 먹으면 아기가 확실히 덜 보채고 잠도 잘 자니 다른 일 하시는데 지장도 없었을거구요. 젖도 팡팡 잘 안나오면서 모유수유 하겠다고 광기어린 집착을 보이는 제가 미련해 보였을 수도 있어요.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무렵 허심탄회하게 물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위대한 것 같아요. 조리사 샘은 어떻게 아들 둘을 키우셨어요?"
"저 때는 다 모유수유 하는 분위기라서 무식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뭐 요새는 분유도 워낙 잘 나오고 하니까..."
알고보니 아들 둘 다 완.모. 하셨더라구요...??? 더욱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분유 보충할 때 엄청 신나보이셨는데...
그 무렵 제게 모유수유에 대한 희망을 주었던 완모 친한 친구가 떠오르면서 ‘넌 사실 독한 년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혼자 했습니다. (사랑한다 친구야.) 세상에 모유수유 하는 엄마들은 다 진짜 독하고 무서운 사람들이었구나 라는 큰 깨달음과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조건 젖량만 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그 땐 정말 몰랐습니다.
3탄에서 계속됩니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