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프로젝트. 시작.

두 아이의 아빠. 7년 차 택배기사.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합니다.

by 프로젝트 시나리오

시작.

이 두 글자를 쓰려고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처음 이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이곳저곳에 끄적인 지 1년 만에 겨우 용기를 내 여기 두 글자를 적었습니다.


7년 차 택배기사.

결혼 전에는 이런저런 일들을 했었습니다. 영화관 알바부터 카페, NGO 단체 등 소위 돈 되는 일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소유욕이 많진 않아서 혼자서 가치관을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적당히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같이 먹고살아야 하는 식구가 생기니 달라지더라고요. 아내나 저나 꿈 많고 철없는데(그러면 돈도 없더군요), 어쩌다 둘 다 자식들을 믿고 응원해 주는 부모까지 있는 바람에 덜컥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나 저나 기술도 없고 문과 출신이다 보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찾고 찾다 아르바이트로 택배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우선 돈 벌려고 시작한 알바가 현실을 만나니 자격증이 되고(나름 국가자격증이랍니다), 사업자가 되고(택배기사 대부분은 개인사업자입니다), 탑차라는 빚이 되고, 직업이 되어 7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연이 많습니다만 앞으로의 이야기에 녹여내고 싶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

사랑스럽고 다재다능한 아내와 그보다 조금 더 사랑스러운 어린 두 아이가 제 식구입니다. 아내는 제법 공부도 잘했고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 열심히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돈 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요.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오랜 고민과 상의 끝에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첫째가 찾아와 주었죠. 둘째까지 낳아 기르면서 제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아내가 오롯이 육아와 살림을 맡아 주었습니다. 입에 들어갈 먹을 것과 몸을 뉘일 곳을 끊기지 않게 유지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철이 들어가고 꿈은 잘 때나 꾸는 거라 여기면서 나이가 들어가던데, 저희 부부는 점점 꿈이 가까이 느껴지더라고요.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이상하게 담이 커지고, 먹고사는 건 무슨 일을 해서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꾸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됩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걸 활용해 생각만 하던 것들을 하나씩 하는 중이고, 저도 현재는 프리랜서 택배기사로 일하다 보니 일을 줄이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는 충분히 시간을 보내야 하고, 먹는 것도 되도록 해 먹으려 하고, 일은 일대로 해야 하니 참 녹록지 않은 현실이죠.


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이상한 생각.

각자 겪는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 외에도 시나리오를 쓰기 힘든 이유는 많습니다. 사실 굳이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할 필요도 없이 많죠. 살아오면서 짧은 글이나 대학 과제 수준의 글쓰기를 계속 해오긴 했지만 그게 전부고,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고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할 뿐 관련 공부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소설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읽어본 적도 없는 시나리오라니요.

그럼에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안 할 수가 없어서요. 예전부터 제 속에서 꺼내놓고 싶은 단어들, 문장들이 있었고 SNS 같은 곳에 꺼내놓기도 했었지만, 그 형태가 시나리오였던 적은 없습니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서는 간간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것마저 사그라들기도 했습니다. 좋은 글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보다 훨씬 못할 것이 뻔한 내 글을, 안 그래도 별것 없는 글도 많은 세상에 굳이 하나 더 보태서 뭘 하겠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한 일 년 전부터 자꾸만 속에서 뭐가 꿈틀거리고 계속 생각이 나고 머릿속에서 영상이 되어 그려지는 겁니다. 제 안에 있는 이야기들이 저만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일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걸 어떻게든 끄집어내지 않으면 영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안될 이유 수만 가지를 넘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만만치 않은 다른 불편함들을 무릅쓰고.

쏟아내고 싶은 불편함 못지않게, 반대편에서 제 입을 틀어막고 손을 붙들어 매는 불편함 들도 많습니다. 가장 큰 건 발가벗겨지는 듯한 부끄러움과 뒤따라오는 두려움이죠.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곳에 결과가 아닌, 저의 과정 그대로를 올릴 생각이라서요. 처음엔 전문지식이 전혀 없이 시작하는 제가 공부해 가는 과정만 올리다가 나중에 완성된 작품을 짠! 하고 꺼내놓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진 글을 올리면 부끄러움이 감소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기초한 막연한 기대와, 안 되겠다 싶으면 언제든 쉽게 그만둘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습니다. 공부라는 핑계로 시나리오를 쓰는 걸 미룰 수 있겠다는 안일함도 거들었고요. 아내는 저의 그럴싸한 계획을 듣고 저를 잘 아는 만큼 단번에 파악해 '일단 쓰기 시작하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아내 말을 잘 들으면서, 또 굉장히 빨리 듣는 편입니다.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곧바로 저 역시 스스로 그럴듯한 계획의 기초가 불안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으로 풀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택배 일을 7년이란 시간 동안 하면서 얻은 큰 힘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모든 것을 공유하면서도 가감 없이 조언해 줄 수 있는 아내가 있긴 하지만 그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주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거든요. 여전히 익명성에 기대 꺼내볼 수 있는 작은 용기이지만 여기에 저의 '과정'을 꺼내두고 피드백을 들으며 공부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완성된 시나리오 한 편, 한 편의 연재가 아닌, 시나리오를 향해 가는 여정의 연재입니다. 굳이 이렇게 해서 저 자신을 여기 묶어두고서, 당면할 수많은 어려움에도 어쩔 수 없이 돌아와 어떻게든 써 내려가게끔 하려는 의지입니다.

제로 베이스에서 택배와 육아를 하며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의 여정을 응원해 주실 분들을 모셔봅니다. 이 드라마는 그간 고민해 온 삶의 사색과 택배일을 하며 배우고 겪은 일들을 담은 저의 자전적 스토리입니다.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