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도전기 첫 번째 이야기
도 막상 두 번째 글에 제가 쓴 내용을 담으려니 머뭇거려집니다. 이 공간에 진솔하게 저의 과정을 꺼내놓겠다고 스스로 마음먹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것을 그냥 올리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래도 처음 기록한 것 그대로를 펼쳐 두는 것이 저 자신에게 좋겠다는 생각에 손으로 메모한 것대로 사진으로 올려봅니다.
네, 저는 악필입니다. 손글씨에 익숙지 않은 세대 여서가 아니라 그냥 악필입니다. 초등학생 땐 서예로 상도 받았다는 것이, 상장이란 증거로 남아있지 않았다면 기억이 가물해지는 지금쯤은 저조차 믿지 못했을 겁니다. 악필로 알아보기 힘든 글자를 연한 연필로 적어 더 못 알아보겠군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이것이 시나리오를 1도 모르는 사람이 쓴 것이 맞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도무지 소설인지 시나리오인지 수필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겠네요. 이걸 적어놓고 다른 시나리오도 찾아보고 용어도 찾아보면서 정체 모를 글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라'는 아내의 조언을 듣자마자 노트와 연필 하나를 들고 적기 시작한 글입니다. 제게 중요한 건 말 그대로 일단 써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선 적어두고 싶었던 사건 하나를 생각나는 대로 글로 옮겨두었습니다.
제가 일하면서 직접 겪은 일을 약간의 각색을 해서 적었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서 이 내용을 올리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었지만 제가 알기로 언론에 다루어지지 않은 일인 데다가 내용만으론 신상을 특정할 수 없기에 고민 끝에 올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겪기 어려운 일이라 제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거든요. 그래서 제일 먼저 이 사건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메인 사진은 실제 장소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실 아이가 걸터앉아 있던 곳은 2층이어서 생명에 지장은 없는 높이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위험했을 수도 있겠죠. 제가 이런 일을 뉴스에서 봤다면 대수롭지 않게 하나의 해프닝으로 여겼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심각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경찰을 포함해 구급대원 여러 명이 출동해 있었고 소방차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의 아무 감정이 없는 듯한 표정과 절박한 어머니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아빠다 보니 무엇보다 그 어머니의 심정이 전해지더라고요. 2층 높이라는 객관적 사실은 내 아이가 투신하려 한다는 주관적 사실 뒤로 가려진 채 그저 절망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뉴스를 통해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조한 일반인의 인터뷰를 전해 들은 적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뉴스를 볼 때 당사자가 물론 놀랐겠지만 뿌듯했겠다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얼떨결에 제가 그 당사자가 되어보니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방해되지 않게 얼른 배송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평소에 비해 2배 이상 물량이 많기도 했고, 방해하지 않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는지 제가 배송하려던 물건이 정확히 바로 그 집 택배였던 겁니다. 일단 집을 확인하려고 가까이 가서 보니 그 집이었고, 배송해도 되는 건지 망설이고 있을 때 경찰 분이 무언의 지도로 저를 이끌어주어 뭐에 홀린 듯 계단을 오르고 있었죠. 계단에서 경찰 분과 눈이 마주쳤을 때 '아 이거 내가 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아이를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일이 수습되고 나서 계단을 내려와 다음 배송지로 가는데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손이 떨리고 얼떨떨하면서 눈물이 울컥울컥 나오더라고요. 얼굴이 온통 눈물에 젖은 채 아이를 향해 절규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고, 그 아이가 정말 괜찮을까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이번엔 이렇게 넘어갔지만 또 다른 시도를 하진 않을까, 아이의 마음에 맺힌 무언가가 해결되고 나아질 수 있을까. 뿌듯함이란 단어는 시간이 지나도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형태로, 하지만 모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인생의 괴로움을 직간접으로 겪어왔습니다. 우울감과 어찌할 수 없는 재난, 질병, 죽음. 제 이전의 직업상 타인의 여러 고통을 마주할 일이 많았지만, 역시 나의 일로 마주하기 시작한 건 결혼 6개월 만에 장인어른이 뇌종양 판정을 받고부터입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지만 원인이 간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속적인 전이 때문에 항암치료를 오래 받으시다가 결국 먼저 가셨습니다. 우리 모두 갈 곳으로요.
저의 관심은 이전에도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이었지만, 아버님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훨씬 더 가깝게 인생을 마주하게 되고, 잘 살아남다가 잘 죽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인생이란 살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살아남을 만큼의 희망과 즐거움은 모두가 가졌으면 했습니다. 남에게 그렇게 말하려면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제가 배운 귀중한 사실 중 하나가 내 주변 사람들이 고달프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같이 잘 살아야 했습니다. 이 시나리오를 적는 마음도 같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래도 주어진 만큼은 살만하지 않느냐고.
(추가) 시나리오 공부를 틈틈이 하면서 이 씬을 수정하고 파일 작업을 했습니다. 저의 과정을 기록하는 의미로 추가합니다.
등장하는 아이의 이름은 그 나이대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으로 정했습니다.
보편적인 것과 특별한 것은 '절대구분'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은 '어느 날' '나'에게 벌어질 수 있죠.
제가 만났던 그 아이의 실제 이름은 모르지만, 어느 가정에서든 어느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에 보편적인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