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켜야 할 것: 건강한 경계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해외 살이 10년 차, 건강한 경계란,


네덜란드 하를렘 동네에서 친해진 이탈리아계 아르헨티나 가족이 있다. 프란치스쿠와 아이린.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건강한 여유와 깊은 통찰력이 느껴진다.


특히 내가 이직 후 많은 업무량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던 시기에 신기하게도 프란치스쿠를 길에서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상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습관처럼 “일 때문에 바쁘다”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에 함께 커피를 마실 때, 프란치스쿠가 내 직장 생활은 어떤지 물어보았다.


사실 일이 많은 것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를 더 바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지금 회사는 Permanent 계약으로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음에도, 여전히 정당한 것을 요청하는데 익숙지 않았고, 부담스러운 요구에 ‘No’라고 하지 못했다. 휴가가 필요해도 직장과 상사에게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내기 어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휴가도 적게 쓰고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 속에서 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런 나에게 프란치스쿠는 책과 영상을 추천해 주었고, 그중 하나가 ‘경계(Boundary)’에 관한 책이었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 나 자신을 지키는 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하기 어려워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은 그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관계에 있어 건강한 경계가 필요하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경계란 무엇일까?


이 책은 그 답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Boundary (Dr. Henry Cloud, Dr. John Townsend 저자)


경계는 친구, 가족, 직장,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 모두에서 필요하다. 친할수록 “아니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지만, 원하지 않는 상황이나 일방적인 요구라면 분명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주려는 마음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서로에게 건강하지 않다. 때로는 나는 원하지 않음에도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싶어 요구를 들어준 후, 오해와 원망을 할 수 때문이다. 진정한 배려는 상대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어려운 부탁이라면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주는 것은 기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주는 일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지, 죄책감이나 강요에 끌려 억지로 할 순 없다. 상대가 내 거절에 불건전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강압적으로 요구하거나 그 요구가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라면, 거리를 두고, 필요하다면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의 선을 존중할 수 있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다. 진정한 사랑과 존중은 서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상태에서 원망 없이 주고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결국 건강한 경계는 나를 지키는 것이자, 동시에 상대와의 관계를 더 깊고 오래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조건적인 ‘예스’가 아니라, 서로에게 건강한 바운더리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




이 책을 읽은 뒤, 회사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정하고 무리한 요구에 선뜻 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외국 동료들은 이미 자신만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지키는 데 익숙해, 예의 없이 선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되려 경계의식이 없던 내가 그들의 선을 침범한 적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개인의 경계를 쉽게 넘으며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많았기에. 그게 익숙해져서 그게 나를 힘들게 하는 줄도 몰랐다. 주변에 너무 많은 이들이 경계가 무너진 채 살다가 힘겨워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만약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면, 이곳에서 배운 건강한 경계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 불필요한 간섭이나 과도한 요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한국 사회와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존재를 인식하고 좀 더 조심하려고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