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거기서 거기라는 착각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해외생일 10년 차, 거기서 거기라는 착각


ㅣ 여러 곳을 살아봤지만, “어디든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공감되지 않았다.


너무 극과 극인 곳을 다녀서일까? 나에게 거기서 거기인 곳은 없었다.


잠깐 방문했던 미국 샌디에이고의 잘 사는 동네와 케냐 오지 마을은 정말 달랐다. 샌디에이고 바닷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서핑하며 웃는 아이의 모습과, 마실 물 하나 없어 오래된 페트병에 흙탕물을 긁어 담는 케냐 아이들의 모습은 마음이 시리도록 다르다.


나만 보더라도 지금 내가 사는 네덜란드 할렘과 과거에 살았던 다른 나라의 도시들 속에서 나의 삶의 모양은 제 각각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인프라도 잘 안된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아무것도 없이 살아야 했고, 어떤 곳에서는 부족함 없이 풍요롭게 살았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느끼는 행복과 슬픔, 근심의 주제와 무게들이 달랐다. 삶의 우선순위들도. 그렇기에 나에겐 모든 환경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고, ‘거기서 거기’인 곳은 없었다.



ㅣ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그 기회를 가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꼭 직업으로써가 아니더라도 글이나 시간, 물질을 통해서든 말이다.



ㅣ 어디든 거기서 거기인 건,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걸까?


한편으론, 환경과 상관없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로 사람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 같다. 비슷한 생각과 마음으로 산다면 다른 곳에 가서도 삶에서 맺는 열매는 비슷할 것이다.


지금 나는 네덜란드에 있다. 이곳에서의 삶이 좋다. 나라는 사람과 잘 맞는 부분이 많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곳에서 건강하게 마음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안다. 아무리 내가 내 미래를 계획할지라도, 사람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언젠가 원하든 원치 않든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릴 것이다. 그때도 어디에 있든 똑같은 마음으로 산다면, 삶의 모양은 달라도 맺는 열매는 비슷하지 않을까?


그 어디에 있든, 나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좋은 열매를 맺으며, 거기서 거기의 모습으로. 그렇다면 어디에서 사는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