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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Aug 19. 2021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것들

나이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흔히 여자의 나이를 자동차에 빗대어 감가상각 된다고들 표현하곤 한다. 


  나이가 성별을 가려가며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가치가 떨어지는 건 왜 유독 여자의 나이뿐인 건지 때론 좀 억울한 생각이 들지만. 클럽, 사교모임 등에서의 나이 제한이나 결혼업체 가입비가 나이에 따라 올라가는 것을 볼 때면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특히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다 보면 죄책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이러한 사회적 프레임 속에서 언제나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 차 보였던 새해가 어느 순간부턴가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오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나이를 물어오는 질문에는 꽉 찬 39살이란 표현이 싫어, 태어난 연도나 띠로 답하거나 혹은 30대 후반으로 대충 얼버무리기도 한다.  


  어느덧 40이란 숫자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30대를 앞두고선 싱숭생숭한 마음에 의식이라도 치르듯 회사의 서른을 앞둔 동갑내기 친구들끼리 서른 맞이 새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잠순이라 한 번도 도전한 적 없던 일출을 난생처음 보며 소원을 빌기도 했는데, 이젠 꽉 차 버린 숫자 때문일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덤덤해졌다. 그리고 어차피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오를 수 있는 한 마리의 연어가 될 수 없다면, 나는 거친 세월의 물살에 편승하는 서퍼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이를 한탄하기보다 내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감탄하며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이를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라 와인에 비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적절한 습도와 온도에서 숙성이 되어 마침내 혀끝을 감아 도는 깊은 맛을 만들어 낼 인고의 시간. 그 숙성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 진한 삶의 향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1.    좋고 싫음이 분명해진다.

  어렸을 땐 주변 사람들이 좋으면 나도 따라서 좋아하려 노력했고, 주변에서 싫어하는 것들은 나도 덩달아 싫어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나 자신에 대해 더 분명히 알게 되고 나의 호불호를 표현할 용기도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때에 내가 화가 나는지 혹은 기쁜지,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잘 풀리는지, 어떤 때에 후회하는지와 후회하지 않는지, 시행착오를 통해 수년간 축적된 데이터 베이스와 경험에서 누구보다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결정의 기로에 설 때면 더 빠르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2.    내려놓기

  나이를 들수록 남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때 보다 나 자신을 더 쉽게 내려놓게 된다. 심지어 포기하는 것도 쉽다. 

썸을 타다 가도 상대방이 내 맘처럼 움직여 주지 않을 때면 혹은 밀당을 한다 싶을 때면 그 긴장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포기해버린다. 인연이 아니겠지 하며…

욕심을 가지면 손안에 얻는 것은 있겠지만, 욕심을 버리면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다. 적당한 현실과의 타협, 나만의 보호색처럼 그렇게 유리 멘탈이 되는 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한다.


3.    맛집 신공 노하우

  어느 지역의 맛집이 무엇인지 알고, 어느 철에 어디를 가면 무엇이 좋은지 안다. 부동산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 차라 웬만한 거래 경험은 물론 뉴스에서 접할 법한 사례도 겪어보았고, 별다른 쓸모는 없지만 증권투자상담사, 선물거래 상담사 자격증과 회계, 세무 쪽 업무 경험과 지식이 좀 있어 주변 동생들이 은행, 부동산 등 재무 상담 관련해서 많이 물어오는 편이다. 도움을 받기만 했던 어린 시절과는 나이와 함께 나름 쌓인 노하우와 지식으로 달리 이제는 조금이나마 주변에 도움도 줄 수도 있다. 


4.    맷집과 여유로움

  큰 기쁨도 큰 슬픔도 분노도 모두 겪어 보아서일까? 웬만한 일에 감정 기복이 예전보다 크지 않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어려움이 찾아와도 예전과 다르게 평점심과 여유를 유지할 수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예초에 20대처럼 더 이상 무모한 도전은 하지 않는다. 시작하기 전 일단 승산과 확률부터 따져본다. 그래서 큰 발전도 없지만 큰 실패와 위험도 피할 수 있어, 인생의 굴곡이 좀 더 완만해졌다고나 할까. 






  내년이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다. 


푹신한 이불 베개에서 한 숨 잠과 달콤한 디저트, 누워서 보는 티브이의 유혹에 한없이 힘차게 흔들리고 있기에, 공자와 같은 성현에게나 가능할 것 같은 불혹이란 말이 나 같은 우매한 평민에게는 선뜻 가슴에 와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곧 마흔이다. 

   

  30살이 되던 해, 남들보다 좀 더 빠른 내 인생의 첫 승진이었던 '대리'란 타이틀을 달았고, 생전 처음 내 이름으로 된 부동산 문서를 거머쥐었고, 그리고 내 곁에 영원히 있을 줄만 알았던 가족을 처음 떠나보낸 부친상의 아픔도 겪었다. 처음으로 남자 친구도 사귀었다. 그렇게 남들보다 빠른 템포로 혹은 느린 템포로 나는 나만의 인생의 속도로 나의 30대를 맞았고, 어찌 보면 20대와 30대의 삶은 그 시작부터가 달랐다. 


40을 앞두고 있는 지금 과연 40대의 삶은 또 30대와 얼마나 다를까 하는 생각에 기대와 걱정이 앞선다. 결혼과 육아, 전문자격증 취득, 작가로서의 또 다른 삶 등등 인생의 반평생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내가 걸어보지 못한 길들이 많기에, 남아있는 길들을 나 자신에게 하나씩 선물하며 그 선물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는 재미로 나의 40대를 화려하게 혹은 소소하게 장식해 보리라 다짐해본다.  


불혹을 앞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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