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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Aug 19. 2021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

만원의 행복

   내가 어릴 적 받은 세뱃돈 단위는 천 원이었는데, 물가가 올라버린 요즈음 조카들 손에 쥐어 주려면 만원은 돼야 내미는 손도 부끄럽지 않을 듯하다. 어린아이들도 쉽게 손에 얻을 수 있는 이 만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만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람의 딸 한비야


   대학교 때 참석한 어느 경제캠프에서 우연히 한비야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당시 한비야는 바람의 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란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내 기억 속 한비야는 태양에 새카맣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에 마이크도 필요 없을 것 같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집게손가락 하나를 펼쳐 들고 "만원만!"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청중 둘째 줄에 앉아 꽤나 자세히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지에서 목숨을 거의 잃을 뻔한 아찔한 경험담을 비롯하여 귀가 쫑긋 할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지만 지금까지도 나의 머리에 강렬히 남아있는 것은 오직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치던 그녀의 돈 만원 타령이었다.


   아프리카의 마을에서는 수많은 어린아이가 죽을 먹지 못해 혹은 만 원짜리 주사를 맞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원래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잘 못하는 성격이었던 그녀이지만 품에 안은 작은 생명을 돈 만원의 주사로 살린 경험을 한 뒤로는,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온 빚쟁이 마냥 어디 가든 돈 만원만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말했다. 


    당시 한 끼의 밥, 한 잔의 커피를 살 돈이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한 발의 총성과도 같은 울림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그동안 나는 일상에서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밥 한 끼,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리며 마치 어린 죽음을 수수방관하며 살아왔던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졸업 후 첫 직장에 취업하고 수습도 채 마치지 않은 시기에 상사의 눈칫밥과 주말 출근과 야근의 반복으로 내 피땀 눈물을 갈아 넣어 손에 쥐게 된 소중한 내 첫 월급으로 나는 드디어 돈 만원의 기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정 비율로 해마다 연봉이 늘 때마다 후원금을 조금씩 늘려 나갔다. 긴급구호사업의 기부로 시작해 막상 아동 후원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대학시절 자원봉사 동호회 경험으로 고아원 봉사가 상상했던 것처럼 직접 아동들과 놀아주는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설픈 봉사로 몇 번 왔다가 더 이상 오지 않으면 아동이 더 큰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아동 후원은 후원자 사정으로 후원이 중단되면 다른 후원자를 연결해주기에 후원이 계속 진행되어 사실 후원 도중 중단되더라도 사실상 아동에게 금전적으로 문제는 없었겠지만 왠지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에 아동 후원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첫 발을 내디딘 아동 후원. 회사를 그만두고 쉬거나 휴직을 하면서 수입이 없을 때에도 통장잔고가 마이너스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아동 후원만은 중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힘든 순간에도 끈을 놓지 않았던 나의 아동 후원도 어느덧 첫 번째 아동이 커서 독립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아동이 18세가 되면 후원은 종료된다.) 아마 자식을 키워 결혼해 독립해 나갈 때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의 가난한 환경과 마을을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동에게 마지막 편지를 작성해 보냈다. 도움은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손도 내밀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하기에 그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식장 구석에서 놓인 10주년 기념 증서도 벌써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아프리카에 후원을 해온 지도 어느덧 벌써 14년째다. 인내심 모자란 내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내가 무언가를 해본 것도 참 드문 일이기도 하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내가 눈을 감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내 인생에 그래도 잘한 일이라 생각될 나의 자부심이기도 하고, 세상 반대편에 나와 끈끈한 인연의 고리로 이어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가슴 두근거리는 신기함과 동시에 따뜻함으로 채워주는 나의 심장의 온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때로 일을 관두고픈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후원을 늘려가려면 좀 더 잘 벌어야겠다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 아동 후원.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바닥에서 끌어올리려 돕고 있었던 것은 아동인지 어쩌면 정작 나 자신은 아니었는지 가끔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2년이 지나도 더 이상 먹통이 되지 않는 폰을 만들어내는 삼성의 나날이 진보하는 기술 탓인지 아니면 핸드폰을 바꾼 뒤 각종 업데이트와 패스워드 찾기가 귀찮았던 내 귀차니즘 탓인지 핸드폰을 7년 넘게 썼다는 사실조차 유심을 변경하면서 적용되지 않는 모델임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핸드폰을 바꿀 정도로 기계에는 인색했던 나지만 같은 값어치라도 매해 후원에 드는 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람마다 만원의 가치는 다르고 내가 한비야만큼의 짙은 호소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줄어드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보다, 먹어버리면 없어질 한 순간뿐인 음식을 사는 것보다, 때로는 한 생명을 살리고 한 아동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만원의 기부를 인생에서 한 번쯤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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