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것...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떠나려 애쓰던 해외여행은 물론, 국내에서의 이동도, 가족끼리 모이는 식사 자리조차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매년 명절 차례 및 제사도 최소 필요 인원으로 간소화되고, 여름과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매년 가족 모임을 중요시하시는 외삼촌네에서 모이는 것도 이제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져 버린 지금...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산기슭의 외로운 하이에나처럼 어슬렁어슬렁 가까운 근교로 카페를 찾아 나선다. 내가 사는 곳인 울산, 가족들이 있는 곳인 부산에서 2~30분만 차로 가볍게 이동하면, 탁 트이는 풍경을 마주한다. 몇 시간을 굳이 허리 아픈 비행기 좌석에 쪼그리고 앉아, 시차를 인내해 가며,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유심 칩을 갈아 끼워 낯선 곳을 지도 어플을 켠 채 방황했던 그간의 수고와 번거로움이 맥이 빠질 정도로 잠깐의 이동만으로도 해외여행에서 얻곤 했던 설렘이 나를 반긴다.
해외여행이 간절히 생각날 때, 그 빈자리를 달래어 줄만한 소소한 아이템들을 소개합니다.
1. 이국적 소품
태초에 나름 우리 집 인테리어 컨셉은 모던 그레이였다. 이 콘셉트에 어울렸던 모던한 베란다 등이 이제는 수명이 다했는지 나 좀 봐달라며 현란하게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전구 등을 갈아 끼우는 손쉬운 방법 대신, 분위기를 전환시켜 줄 다른 등으로 한번 바꿔보기로 했다. 지난번 베트남 가족여행 때 캐리어 빈 공간이 없어 포기한 라탄 등이 내내 마음속 한구석을 따라다녔는데, 집의 전체적인 컨셉과는 맞진 않지만, 베란다는 분리된 공간이니 괜찮을 거란 생각으로 그동안 사보고 싶었던 라탄 등을 과감히 주문했다. 계속 눈독 들이던 아이라 그런지 등을 달아놓고 혼자서 내내 바라볼 때마다 만족스러웠다.
동남아 느낌도 나고 일본 느낌도 나는 이 작은 등이 뭐라고 자꾸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국적 소품을 집안에 하나 가져다 놓기만 해도, 왠지 마음은 이미 해외로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다.
2. 외국 음식 배달
어떨 때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황금빛 모래알 백사장과 금빛 물결 사진 한 장만 봐도 해외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에메랄드 빛 파도와 함께 물 밀듯 밀려왔다.
그럴 때면 나는 허겁지겁 배달의 민족 앱을 켠다.
그리고 주문한 베트남 쌀국수, 볶음밥, 분짜.
여러 종류의 요리를 맛보고 싶어 배달비를 아낀다는 미명 아래 결국 배달비의 4~5배는 되는 음식을 훌쩍 더 시키곤 혼자서 다 먹을 수도 없어 냉장고에 넣어 놓고 두고두고 끼니때마다 꺼내 먹었더니, 나의 집콕 베트남 여행은 어느덧 2박 3일이 되어버렸다.
그러고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 때면, 방구석 여행객의 간편한 초이스로 태국으로 1박 경유하면 된다. 거침없이 나는 집에서 1분 거리의 태국 레스토랑에서 팟타이 하나를 포장해 온다.
이국적인 향신료의 소스와 국물로 내 뱃속을 가득 채우고,
그렇게 다소 짧긴 하지만 더 길어지면 지겨워질 수 있어 아쉬움이 남을 만한 적당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배의 배고픔과 함께 해외여행에 대한 헛헛한 허기와 목마른 갈망이 음식의 온기만큼이나 따뜻하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3. 닮은꼴 찾기
굳이 해외로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이에서도 이국적인 경치를 뽐낼 만한 스팟을 찾기 시작했다. 관점만 바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늘 가던 곳도 늘 보던 곳도 색다르게만 느껴졌다. 내가 새로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 발길 닿는 곳은 모두 여행지가 된다.
1) 부산 광안대교 =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혹은 맨해튼의 브루클린 브리지
고향인 부산에서 나의 최애인 광안리. 부산 시내에서 30분 이내의 접근성으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서 바다를 볼 수 있고, 맛집이 즐비한 번화가가 함께 있어 입이 즐겁고, 바다만 있어 다소 심심했던 뷰를 광안대교가 꽉 차게 채워준 곳. 광안대교 위를 차로 지날 때마다 머리 위로 스쳐가는 철기둥을 볼 때면 뉴욕에서 지내면서 건너던 브루클린 브릿지가 오버랩된다.
광안리의 낮과 밤은 모두 아름답다.
2) 부산 달맞이 고개와 해운대 더베이 101 = 홍콩
벚꽃이 필 즈음이면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교통 체증이 장난이 아니지만, 달맞이 고개는 언제나 사랑이다. 문텐로드로 파도 소리를 이어폰 삼아 바람에 묻어오는 솔잎향을 맡으며 고즈녁하게 걸어도 좋다. 누리마루와 광안대교 광안리 해수욕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야경도 아름답다. 달맞이 고개의 야경도 홍콩 야경을 떠오르게 만들지만, 해운대 더베이 101은 높은 아파트 빌딩 숲이 들어서 마치 홍콩과 흡사한 뷰를 자아낸다.
달맞이 고개에서의 광안대교와 누리마루 및 해운대 해수욕장 뷰
3) 울산 = 발리
울산에는 1박 2일에 나온 발리 온천도 있다. 지역이 시골이라 근처 지명 이름이 **읍 **리인데, 이름이 우연히도 해외지명과 같은 발리라 불렸던 것이다. 온천을 좋아하고 물에 까다롭기 그지없는 나로선 물 좋기론 경남에선 손에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외에서 해물라면도 맛볼 수 있는 울산 간절곶의 한 카페는 발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을 자아낸다.
4) 부산 기장 장안사 = 말레이시아 코타키나 발루
6월과 9월 밤에 찾아가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설사도 있었다 하나, 현재는 가족단위로 찾고 있다.
5) 부산 기장 철마 라벤더 팜 = 프랑스 남부 및 일본
아직 프랑스 남부 및 일본의 라벤더 밭을 가보지 못했기에 나름 만족스러웠던 근교로 가볍게 바람 쐬기 좋은 곳. 입장료는 나갈 때 허브 화분이나 허브제품 등으로 하나 교환해서 갈 수 있어 입장료가 그다지 아깝지 않은 곳.
6) 남해 = 유럽과 동남아
(1) 독일마을 = 독일: 독일마을은 이름답게 주황색 지붕만으로도 이미 독일을 남해에 가져다 놓은 느낌이다.
(2) 설리 스카이워크 =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광산 전망대: 설리 스카이워크는 최근 2020년 12월 오픈해 여신강림에서 여주인공이 그네를 탄 곳으로 촬영되었는데, 일단 올라가볼 것을 강추. 비록 할슈타트처럼 백조와 소금광산은 없지만, 멀리서부터 한눈에 보이는 멋진 조형물 위로 올라서면 탁 트인 전경과 전망대 밑으로 내려다 보이는 물빛은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의 소금광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청록빛 물빛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3) 상주해수욕장 야경 = 동남아 야시장: 상주해수욕장은 밤이 되면 전구 하나만으로도 언뜻 동남아 야시장 느낌으로 변신한다. 곳곳에서 불꽃놀이 폭죽 소리도 들려온다.
7) 부산 청사포와 송정 = 일본과 태국
(1) 일본 뷰 미포, 청사포, 송정: 청사포와 송정은 사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붐비지 않고 조용하게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현지인들에 인기 있던 곳인데, 블루라인이 들어서면서 관광 스폿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본 느낌 나기도 하는 블루라인 열차와 스카이 캡슐, 열차 안 풍경, 구덕포와 다리돌 전망대 전경 부산 미포에서 블루라인을 타고 구덕포에서 내려 다릿돌 전망대를 구경하고 청사포까지 걸으면서 바다 풍경을 한껏 즐긴 후 허기가 질 즈음 청사포에서 바닷소리와 함께 조개구이를 구워 먹으면 꿀맛이다.
블루라인 열차가 오가는 철길이 생긴 이후, 한국적이면서도 일본 느낌도 나는 송정 카페 안 열차풍경 및 송정의 야경, 그리고 머스켓 홍차와 체리홍차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샤인 머스켓의 향기와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잔잔한 음악, 자리에 앉으면 물 반 하늘 반 한눈에 들어올 적당한 각도의 바다 뷰 카페의 정갈한 분위기에 홍차잎이 우러들 듯 가만히 젖어드는 카페. 송정과 청사포 바다라인을 따라 어디를 가더라도 따라다니는 노란빛 열차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마치 일본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2) 태국 뷰 송정: 웨이팅이 기본인 핫플레이스 식당. 웨이팅 하는 입구에서부터 코를 자극하는 향신료 향으로 태국 여행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식당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인테리어부터 태국 느낌이 물씬 난다. 캐나다, 미국 뉴욕, 서울의 이태원, 태국 현지에서 모두 똥얌국을 먹어보았는데, 여행에 대한 오랜 갈망 탓인지 매콤 상큼한 이 맛에 오랜 시간 굶주린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곳 똥얌국 쌀국수가 가장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향신료를 많이 썼지만, 한국인이 먹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맛. 동남아 여행 가면 향신료 때문에 항상 고생하던 같이 간 친한 동생도 요 몇 달새 먹어 본 음식 중 단연 최고였다 이야기한다. 이국적인 느낌과 음식만으로도 여행을 떠나온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면서, 일단 음식을 먹어보면 그 많은 웨이팅이 납득 가는 곳. 웨이팅이란 지겨운 기다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단 실패 없는 기다림일 것을 보장하기도 한다.
태국 음식으로 원샷 원킬. 인테리어와 종업원들의 야자수 무늬 티셔츠, 입구부터 퍼지는 태국 향신료 향으로 마치 태국에 온 듯한 착각을 주는 곳
8) 대구 = 유럽의 교회 풍경
대구는 근대화 건물이 특색 있게 잘 보존된 곳 같은데, 현대적 건물 사이사이로 눈에 띄는 고딕 양식의 교회들이 곳곳에 많다. 한국에서 절 구경하듯, 유럽에 가면 항상 유명한 교회 하나씩은 감초처럼 관광 코스에 끼어드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비슷한 뷰를 접할 수 있었던 곳. 계산성당은 더킹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9) 경산 = 프랑스와 캄보디아, 라오스
(1) 경산 카페 = 프랑스 에펠탑: 경산의 한 카페에는 귀여운 에펠탑이 있다. 한국의 미를 대표할 소나무와 빨강 열매가 인상적인 석류나무가 함께 어우러진 쓰리샷이 이색적이다. 조화인 줄 알았던 큼지막한 새빨강 꽃은 다가가 만져보니 생화였다.
(2) 반곡지 = 캄보디아, 라오스 블루라군: 출사 명소로 유명한 반곡지는 웅장한 존재미를 내뿜는 나무 덕에 캄보디아 혹은 라오스의 블루라군도 떠올리게 만든다.
10) 부산 감천문화 마을 (=이탈리아 포지타노)과 부네치아 (장림포구 = 이탈리아 베네치아) : 포지타노의 깎아내리는 듯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집들의 구성이 남부럽지 않을 듯한 뷰를 자랑하는 감천 문화마을. 포지타노 같은 바다 뷰가 인접해 있지 않아 다소 아쉽다면, 근처 장림포구로 이동해 부네치아를 맛보면 된다. 알록달록 색깔로 감성을 자극하는 장림포구는 사진 명소이다.
오늘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훌쩍 집 가까운 곳으로 동남아 여행, 혹은 미국, 유럽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그마저도 어렵다면 나만의 작은 시도로 유럽과 동남아를 집 안으로 가져와보세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
여행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