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멋들어진 펜션이나 낭만 가득 글램핑장, 감성 맛집 캠핑장 따윈 없었다.
그저 차에 무거운 아이스박스, 짐보따리와 텐트를 모두 짊어지고 아빠 친구네 세 팀 혹은 친가나 외가 식구 세 팀 이렇게 차 3대가 나란히 줄을 지어서 몇 시간을 운전해 저 멀리 계곡으로 바다로 떠난다. 데크도 없는 노지를 고르고 골라 텐트를 깔면 무심히 툭 튀어나온 돌멩이 실루엣이 그대로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바닥면에 등이 배겨도 그 시절에는 그저 까르르 웃어넘길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빠가 텐트 주위를 호미로 파 물길을 만들어 놓는 걸 구경하면서, 텐트 안에서 운치 있게 비 내리는 풍경과 빗소리를 감상해본다.
낮에는 어깨의 껍질이 하얗게 벗겨질 정도의 화상 투혼으로 물장구질을 하고, 밤이 되면 플래시를 계곡에 비추는 열정으로 코펠 밥그릇을 연장 삼아 송사리 탐험대로 나선다. 수영하다 물속에서 튜브에 몸을 담근 채로 아기새 마냥 주둥이를 내밀어 엄마가 바통 터치해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옥수수 한 입도, 라면 한 젓가락도, 그저 그렇게 꿀맛이었다. 밤이면 텐트에 누워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쏟아질 듯한 별들을 바라보는 것도, 플래시를 얼굴에 비추며 전설의 고향 저리 가라 싶은 으스스한 공포 얘기도, 자칫 강약 조절에 실패하여 감정이 격하게 상할 뻔한 치열한 베개싸움과 인디언 밥을 벌칙으로 하는 각종 놀이들도, 텐트에서 하는 건 모두 그 재미가 2배였다.
그렇게 우리에게 캠핑은 재미 증폭기였다.
지금 우리에게 캠핑은 추억 증폭장치이다.
어른이 되어 샤워시설, 화장실 시설이 다 갖춰지고 평평한 데크가 있는 캠핑장으로 조카들을 데리고 가보니 매년 여름마다 부지런히 우리를 데리고 다니신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려서는 원터치 텐트조차 없던 조립도 어렵고 공간도 비좁던 텐트와 멀리 떨어진 화장실이나 샤워시설도 없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캠핑에 대한 불편한 기억보다 오히려 재미있는 기억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시설이 제법 잘 갖춰진, 차로 30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캠핑시설로 모든 장비를 갖추고서 막상 조카들을 데리고 떠나보니 그 모든 게 노동이었다. 땡볕에 텐트를 치는 것도, 밥을 하는 것도, 설거지를 하는 것도, 치우는 것도...
이런 수고스러움을 알아버린 뒤에도 여전히 잘 갖추어진 펜션보다 텐트가 있는 캠핑장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마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좋은 추억과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리라. 숯불에 구워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배어물면 낮 동안의 고생이 고기와 함께 입안에서 눈 녹듯 사르르 녹아버린다. 고구마와 감자라도 구워 먹자며 별빛이 쏟아질 듯한 밤이면 옹기종기 모여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낭만 가득한 캠프파이어를 한다. 그렇게 한참을 피어오르는 불빛에 불멍을 때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살포시 내려앉은 올리브빛 밤공기와 별빛 밤 풍경에 메말라버린 감성이 돋아난다. 그렇게 캠핑은 감성 증폭기이다.
이제는 그 상콤한 추억 한 스푼과 달달한 감성 두 스푼으로
우리는 캠핑에서 번거로움의 쓴맛과 수고스러움의 매운맛 따윈 잊어버리고,
매번 공사가 다망하시고, 장비를 모두 갖추신 남동생님을 졸라댄다. 또 캠핑 가자고...
사실 우리 가족은 캠핑에 최적화되어 있다.
엄마는 무려 40여 년간 캠핑 요리사 내공을 자랑한다.
내 동생은 7인승 SUV 차량은 물론 한겨울에도 캠핑 가능한 모든 풀장비를 장착한 캠핑 마니아이고,
형부의 최근 새롭게 바뀐 차는 세 조카와 우리 가족 모두를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9인승 카니발이며,
나는 나의 소형 SUV에 최근 시민 참가단의 제품 실증 활동으로 곧 차박 아이템을 장착할 예정이며, 현재 휴직 중이라 시간이 그저 남아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했던 감성 충만 캠핑 계획은
핵심 멤버인 동생의 스케줄만 비워지는 날이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이 무적 캠핑 가족의 앞길을 가로막은 뜻밖의 복병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4단계 격상으로 사적모임 2인 이상 집합 금지였다.
코로나의 빠른 종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