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와 신민아, 보조개가 매력적인 두 배우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갯마을 차차차'란 드라마를 요즘 들어 자주 시청하고 있다. 화면에서 보는 두 배우의 케미가 무척 좋아 보인다. 김선호는 공인중개사, 레크리에이션 강사, 미장사 등 각종 자격증을 섭렵한 갯마을의 만능 일꾼 홍반장 역을 맡았고, 신민아는 서울에서 내려온 치과의사 역이다.
갯마을에 홍반장이 있다면, 울주군 옹기마을에는 김반장이 있다.
나는 알고 보면 자격증 콜렉터다. 자격증을 따는 것에 있어서도 나는 맥시멀 리스트였나 보다.
가끔 왜 이런 자격증을 땄을까 나조차도 의아한 자격증도 있다. 아마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운전면허의 경우, 거의 십 년 만에 장롱을 탈출했기에 사실 수고스럽지 않게 2급으로 따서 1급으로 자동 갱신했어도 되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마침내 운전을 시작하면서 광명 찾게 된 날이 찾아온 케이스다. 하지만, 다른 자격증들은 아직까지 별반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 있다.
19년도엔 대체 무슨 일이? 교통사고 나기 직전까지 19년 6,7월 취득한 5개의 자격증, 투상/파생/워드 자격증은 워낙 오래 전 대학시절 취득한 거라 흔적 찾기가 어려웠다.
미술심리상담사 1급
도형심리상담사 1급
리더십 지도사
아동심리상담사 1급
음악심리상담사 1급
자동차 운전면허 보통 1급
동력수상레저기구 일반조종 1급
파생상품 거래상담사
투자상담사
워드프로세서 2급
19년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격증 발행 일자를 살펴보니 파란 색깔 자격증을 모두 19년도 6,7월에 5개를 취득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교통사고 이후 나의 시계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사실 교통사고로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이 리스트에 세무사 자격증도 있을 뻔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찰나 사고로 포기해야만 했다. 또, 업무 야근으로 교육에 이틀 불참만 하지 않았어도, 굴삭기 운전 면허증도 딸 뻔한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어릴 적 꿈이었던 나는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아 직접 셀프로 페인트, 타일 붙이기, 싱크대 시트지 붙이기 등 홍반장처럼 자격증은 아니지만 타일 커터기, 미장, 페인트 도구 등 각종 장비들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그뿐이랴, 마을 문화센터에서 배운 캘리그래피, 뜨개질, 도자기, 앙금 컵케익, 그리고 오르골까지... 나의 배움은 습자지처럼 넓고도 얕았다.
대중없는 나의 자격증 목록에서 그래도 나름 맥락이란 걸 눈 씻고 찾아보면 주로 심리상담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 아동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상처나 트라우마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고 힘들다. 그래서 음악, 미술, 도형 등 친숙한 것으로부터 아이들의 심리를 읽고 상처 받은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도와줌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들이 미처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고 무의식 중에 나오는 생각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관련 각종 심리상담사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어른이 표현력이 더 풍부하기에 상황 인식이나 감정의 표출이 좀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지, 비단 어른이라고 해서 상처 치유방법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취미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상처 치유의 힐링이 되고 스트레스 해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들의 상처는 읽고 치유하기 위해 자격증까지 따는 정성으로 배우려 노력했지만, 과연 나 자신의 상처는 읽어보려 노력했는가에 대해서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정작 나는 내가 힘들어 지칠 때, 차마 힘들다 표현하지 못하고 무의식 중에 표출했던 그 무언의 신호들을 과연 스스로 읽어 내고 있었을까? 아니 읽어 보려 노력이라도 해보았을까?
나는 힘들어 몸과 마음이 피투성이의 상처투성이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아등바등거리며 버젓이 새빨갛게 피가 배어져 나오고 있는 그 눈에 띄는 상처를 애써 모른 척 넘기며 일을, 그리고 회사를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억지로 참으면서 힘겨운 쳇바퀴 굴림 속에 매일 같이 나 스스로 밀어 넣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순간 드라마 속 홍반장의 한 대사가 마치 나의 현재상황을 겨냥한 말인 듯한 착각이 들자 감정이 마구 이입되기 시작하며 나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울려퍼진다.
[신민아: 치(치과), 김선호: 홍 (홍반장)]
식당을 나서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치: 아. 나 우산 있어. 비상시를 대비해서 우산을 좀 갖고 다니거든.
가방을 뒤져도 우산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 치과, 그런 치과가 식당에 두고 간 우산을 챙겨 온 홍반장이 우산을 외려 건넨다. 받아 든 우산을 가리키며,
치: 이거 쓰고 가자.
홍반장이 우산을 물끄러미 보더니 갑자기 치과의 손을 잡고 냅다 빗속을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뛰기 시작한다.
한참을 뛰다 둘은 바다에 다다른다.
치: 미쳤어? 다 젖었잖아.
홍: 어때? 좀 시원해진 거 같지 않아?
치: 아니, 찝집해. 꿉꿉하고.
홍: 그럼 어때. 그냥 그런대로 널 좀 놔둬. 소나기 없는 인생이 어딨겠어? 이럴 때는 어차피 우산을 써도 젖어. 이럴 땐 에라 모르겠다 하고 확 젖어 버리는 거야. 그냥 나랑 놀자. (홍반장이 씨익 웃으며 바닷물을 뿌린다.)
둘은 서로 바닷물을 뿌리며 놀기 시작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아주머니 왈. "잘들논다니..."
홍: 어때? 이깟 비 좀 맞는다고 큰일 안나지?
치: 모르지 내일도 아플 수도
그러곤 킬링 파트. 홍반장이 열이 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치과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다.
(나: 꺄~~~~~ 홍반장, 나랑도 놀아줘!)
쉬지 않고 계속 놓지 않았던 업무를 멈춰 인수인계를 하고 대체인력을 쓰게 되는 것이 나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며, 스쳐 지나가긴 하지만 따박따박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들어오질 않고, 연봉 상승분과 매달 전기, 수도, 가스비를 비롯한 관리비 보조금, 3년 치의 연월차 수당, 퇴직금 상승분, 상여금과 승진을 모두 포기해야 하며, 이미 교통사고로 휴직계를 냈다가 퇴사까지 가신 분의 전적이 있었고, 휴직 중 인력조정이 있으면 일순위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걱정과 항상 음식이 넘쳐나고 곳간이 마르지 않는 회사 대신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휴직을 하면 먼가 큰일이 날 것만 같아, 재택근무, 휴가와 조퇴를 번갈아 가며 쓰면서 그저 그렇게 찢어진 우산을 쓰고 근근이 하루살이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결국 몸이 버티다 못해 휴직계를 냈고, 우산 없이 뛰어든 빗속은 생각보다 시원했고 쾌적하고 안락하기까지 했다.
백수가 체질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회사 밖에서 나는 활력과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홍반장 말처럼 소나기 없는 인생은 없다. 비 좀 맞는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를 내리는 비에 그저 젖도록 내버려 둔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비에 젖어 버린 후 그냥 놀면 된다.
나는 그렇게 내리는 소나기에 젖어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삶의 여백은 여백인 채로 내버려 두며 나의 휴식기를 맞이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