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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Sep 25. 2021

언택트 시대를 사는 법

언택트 라이프

    처음 코로나가 터졌을 때, 나는 밝혀지지 않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집밖으로 나가기를 무작정 거부했다. 매주 가족을 보기 위해 가던 부산행을 멈췄고, 재택근무로 바뀌어 더이상 출근을 해도 되지 않아도 되자 유일하게 내가 집 밖을 나선 것은 음식물쓰레기 건조기가 다 찼을 때와 음식이 떨어져 마트를 갈 때, 병원 치료를 위해서였다. 건조기의 음식물 쓰레기는 한달에 1~2번 정도 다 차게되고, 인터넷 주문마저 폭발하여 온라인 마트 배송이 몇일이 걸리자 이따금씩 바닥난 음식에 마트를 찾아야 했고,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 치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밖을 나서야 했다. 그나마도 외출시기를 한번에 몰아서 최소한의 외출만을 시도했으며, 나가기 전에는 반드시 확진자 동선을 확인했고, 나갈 때에는 마스크로 철저하게 무장하고 아직 코로나 발병자가 발생한 적 없는 청정구역 우리 동네를 벗어나질 않았고, 외출 후에는 빠지지 않고 손을 씻고, 알코올로 차키, 신용카드, 휴대폰을 세척했다. 회사의 재택 기간이 끝나 회사 출근을 시작하자 비로소 동네 밖을 조금씩 벗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점차 흘러, 일년도 넘은 이제는 이 정도 전파력을 가진 질병이 이정도 시기가 지났다라면 이미 집단 면역이 어느 정도 형성 되었을 것이란 생각과 알려지지 않은 질병에 대한 처음에 느낀 두려움도 차츰 무뎌져 점차 바깥 출입이 잦아지게 되었고, 차츰 코로나는 더이상 무서운 질병이 아닌 일상이 되어간다.




코로나가 흔들어 놓은 일상을 한번 되집어 보자.


1. 혼영: 난 사실 혼자 영화를 보러간 적이 없었다. 혼자서 쓸쓸히 영화관을 찾을만큼의 열정으로 그렇게까지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요즈음은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도 어둠의 경로로 혹은 넷플릭스를 통해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친구와 연인과 할일이 없을 때 시간 떼우기 용으로 가는 것이 전부였다.


   친한 동생이 진행 중인 할인 이벤트를 알려주며, 창원에서 '인질'을 볼 것을 제안해왔다. 별로 할일이 없어 영화도 보고 핫플 귀산동 카페에나 놀러갈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시간 반 거리의 운전에 대한 압박으로 포기하자 맘 먹었다.

   영화광인 동생은 평소에도 혼영을 즐겨해 혼영이 갑자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평일에 코로나로 사람이 거의 없을 조용한 영화관의 풍경이 궁금하기도 했다. 얼마 전 소모임에서 4인이 같이 영화를 관람했는데, 여러 명이서 영화를 보러 가더라도 어차피 자리를 띄워서 앉아야 하기에 누군가와 함께 영화관을 간다는 것이 사실 무의미하단 생각에 한번 혼영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이벤트로 리클라이너 좌석이 할인 이벤트로 4천원이면 관람 가능했는데, 난 그날까지 결재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벤트 당일에 영화를 봐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먹고 같이 갈 일행을 찾는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시간대가 맞는 일행을 찾더라도 남자친구가 아닌 이상 내가 편한 동선이 아닌 일행의 동선과 시간에 일일이 맞춰줘야 하는게 좀 귀찮기도 했다. 그래서 제안한 동생과 비슷한 시간에 그녀는 창원에서 나는 정관에서 각각 함께인듯 따로 편하게 혼행을 해보기로 했다. 영화관으로 가는 내내 같이 통화를 하면서 각자 기대감을 얘기하며 영화관으로 이동하고, 영화 마친 후 다시 통화해서 영화를 본 소감을 나누기로 했다. 제대로 언택트 영화 관람이다.

 

   영화관은 역시 조용했고, 영화는 박진감 넘쳤지만, 잔인한 장면도 나와 무서워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공포의 스위치가 한동안 꺼지지 않는 것처럼, 주차장을 내려왔는데, 공포모드가 아직 off 되지 않았던 나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고 흠칫 놀란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녀와 다시 통화하는데 공포영화를 못보는 둘 다 모두 너무 무서웠다며 영화평을 나눈다. 혼영을 하기에는 장르 미스였고, 디스크 환자가 되어버린 나에게 리클라너 좌석에 잔뜩 긴장한 채로 앉아있었더니, 목, 허리가 다시 아파와서 나는 앞으로 그냥 영화는 집에서 편하게 언택트하며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혼영을 경험해보니 현재 나의 신체로는 맞지 않다 생각은 들었지만, 코로나 시대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영화관에서 실감나는 사운드와 큰 스크린에 집중하며 오롯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혼영은 여전히 각광 받을 만한 여지가 있임은 충분해 보였다.


2. 혼밥: 처음 혼밥을 해본 것은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친구와 같이 마트에서 알바를 했는데, 식사 시간이 되면 매장을 비울 수가 없어 둘 중 한명씩 교대로 밥을 먹으러 가야했다.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밥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후다닥 먹어 치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교환학생으로 캐나다를 가게 되었을때, 외국은 혼자 밥 먹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 앞에서 발을 편하게 앞좌석 위에 쭉 뻗어 올린 채 식사 대용 사과를 먹으며 아침 수업을 듣는 학생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았고, 학교 식당에서 이어폰을 들으며 혹은 책을 보며 혼자 밥을 먹는 모습마저도 마냥 자유롭게만 느껴졌다. 나도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점심은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을 때면 내 수업 일정에 따라 혼자 먹기도 했다. 창밖 풍경을 구경하면서 혹은 내친 김에 스시나 샌드위츠를 포장해와서 토끼가 뛰노는 캠퍼스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평화롭게 식사를 하기도 한다.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전혀 쓸쓸하다거나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에서 혼밥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시선 혹은 그 시선에 나도 나 스스로를 측은하게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혼자 식사를 한다는 행위는 동일한데, 단순히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그저 나와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이제 회사는 강제 혼밥행이다. 친한 무리의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와도 식판이 아닌 도시락과 일회용 수저로 바뀐 도시락 키트를 받아 들고 제자리 책상으로 돌아와 각자 아무 말 없이 먹는다. 코로나가 덜 심해지면 식당에서 먹을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도 식탁은 칸막이를 일인자리로 나눠 독서실 분위기의 식사 중 대화가 금지된 고요한 회사 식당 풍경을 낯설게 만들었다.

코로나는 이렇듯 1인식 혼밥을 장려했다.

사천 비토섬 캠핑 & 해상캠핑

3. 혼행, 혹은 언택트 여행: 사회적 거리두기에 부합하게 개인적 공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차박, 캠핑이 레트로풍 감성과 만나며, 더욱 각광 받기 시작한다. 혼행도 많아지고, 인터넷으로 맛보는 랜선 여행도 성행한다. 해외로 출국이 힘들어진 지금 국내 여행지들이 재평가 받기 시작한다. 제주도는 덩달아 몰린 여행객들로 비싼 몸값이 더 올라갔다. 여행의 으뜸이라 불리는 해외여행을 빠듯한 일정에 여러 곳을 둘러보며 직접 발품을 팔아 사진을 찍는 형식의 고정된 틀을 깨부스는 계기를 코로나가 마련해 주었다.


4. 비대면의 일상화: 시민참가단 회의는 모두 줌으로만 진행되었다. 집밖을 나가서 모임원의 얼굴을 직접 보고 해야만 했던 스터디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조차 이제 차츰 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자주 가던 벡스코에서 매달 열리던 아로마 트레이닝도 유투브 채널로 바뀌었다. 코로나로 한동안 못본 조카들과의 얼굴도 화상전화로 많이 접하게 되었다. 무인 키오스크, 무인 결재 시스템을 주변에서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 보안상의 문제로 은행에서 항상 지점 방문을 요구하던 업무들도 이제는 신분증과 핸드폰 문자 확인만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어 편리하다. 얼굴을 직접 봐야 했던 일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로 변모하고 있다.


5. 리모트 워크: 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던 초창기 회사의 재택근무로 나는 침실에 있던 책상을 거실로 내놓았다. 그리고 노트북 거치대와 디스크에 좋을 의자도 거금을 들여 구입했다. 집을 사무실 처럼 꾸며 홈오피스 환경을 만들게 된다. 나의 휴직 동안 대체 인력 채용을 위한 면접에 나는 직접 면접에 참가하였지만, 서울 사무소에 계신 매니저는 먼거리 출장 대신 전화 회의로 언택트 채용이란 새로운 형태의 채용을 시도한다. 해외 출장자들의 출장은 이미 그룹에서 금기화 시켰고, 국내 사무소 간에도 출장보다 전화 회의가 더 주를 이룬다. 회계사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회계 감사 조차 리모트로 진행하는 회사가 많아졌다고 한다.


6. 가정용 키트(집콕 아이템): 집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집콕 아이템이 성행하고 있다.

  화장실 욕조를 없애는 인테리어를 했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좋아하는 목욕탕을 가지 못하자 아쉬운 대로 이동식 반신욕조 제품을 구입했다. 물론 물을 받고 욕조를 씻는 귀차니즘에 두 번 정도 쓰고 말았지만 말이다. 원래도 집순이었던 나는 외식과 외출에 쓰던 돈으로 이제는 더 많은 다양한 형태의 집콕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한다. 특히, 마스크 소독기, 세척기 등 집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위생에 관련된 제품을 더 많이 구입하게 되었다.

   맛집이나 셰프의 요리를 집에서 맛볼 수 있도록 홈쿡 요리 키트가 성행하고, 유투브에는 랜선 요리 클래스가 한창이다. 대형 마트의 인터넷 배달이 어느 때 보다 붐을 이뤘으며, 음식점의 배달, 포장의 수요가 폭증한다. 베란다를 마치 캠핑지처럼 꾸미거나, 집의 한쪽 공간을 영화관이나 바처럼 꾸며 놓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집은 어느 때 보다 팔방미인이 되어 식당이자, 캠핑지이자, 바이자, 도서관이자, 영화관이 되기도 하고, 사무실이자 휴식공간이 되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항상 단체 행동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코로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어쩌면 1인 단독 행동을 장려하는 문화로 탈바꿈 시킨 것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출근해야만 업무가 가능하다는 꼰대적 발상을 뒤집어 엎으며, 재택근무로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도 입증했다. 업무의 연장선이던 회사 회식도 사라졌다. 명절의 풍경도 사뭇 달라져, 불편한 시댁행도 줄어들고, 불필요한 명절 행사도 간소화 되었다. 어찌보면 코로나는 한국에 선진국의 개인주의와 앞선 문화를 강제 전파시킨 것 같기도 하다.


    인류는 예로부터 불편을 통해 위대한 발명을 낳았다. 불의 발견이 그랬고, 양변기의 발명이 그랬듯, 모든 발명은 참을 수 없는 불편함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불편은 발명의 뮤즈이자 최대 원천지인 영감이었던 것이다. 코로나는 가족들을 강제 이산가족으로 만들고, 답답한 마스크의 일상과, 지인들과 만남과 실내 활동에서의 제약이라는 불편함에 잃어버린 2년을 가져다 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불편을 통해 이 시대의 문명이 진화하면서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꿔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는 한국의 의료기술과 문화의 선진화를 앞당겼고,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 시키고 있으며, 코로나로 행해지는 많은 온택트 - 오프라인의 온라인화, 랜선과 가상 현실, 리모트 워크 등 -는 마치 미래사회로 한 발자국 등 떠밀고 있는 것만 다.


   이 시대를 뒤흔들어 놓은 코로나는 과연 실일까 득일까?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관성처럼 코로나시대의 습성이 남아있을까?


   지금은 아리송하기만 한 코로나의 존재는 시간이 더 흘러 먼 미래에 역사가 평가해 줄 수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과연 코로나는 어떤 존재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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