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들은 차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차박이란 단어 자체를 모른다. 언니가 나의 차박 키트 수령 소식을 살짝 얘기했는지 언니네 갔더니 조카들이 연일 이모 캠핑 가자 성화들이다. 여기서조카들의 캠핑이란 차박을 얘기하는 것이다. 마침 원목 키트를 받으러 간 날이라 차에 실린 원목 키트를 한번 보여줬더니 조카들은 조립도 안된 채 실려있는 원목 키트 위에 좋다고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로로 누워보고 세로로도 누워보며 처음 보는 신문물에 조카들은 "여기 몇 명 누울수있어? 이건 뭐예요? 이렇게 내리는 거야? 이거 눌러봐도 돼요? 이건 왜 여기 뒀어? 이쪽 불은 왜 켜져 있어요?" (둘째 조카는 내게 반말하고, 셋째 조카는 평상시 존댓말, 급하면 반말이다.) 연이은 질문공세에 좋아라 아파트 주차장에서 환호성과 소리를질러대니 지나가는 맘들이 관심을 보이며 이게 뭐냐고 덩달아 질문이 쏟아져 나는 사방팔방으로 온통 답을 해대느라 정신없다. 차박 키트 덕에 이모의 인기가 한층 상승했다. 흡사 펭수템을 얻은 기분이다.
시제품에 없었던 컵홀더 구멍을 원목 키트에 부탁했더니 업체에서 내가 원하는 위치에 안전성 여부 등도 같이 검토해서 뚫어주셨다. 그리하여 누워있을 때 머리맡과 팔이 닿을 부위에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중심부는 어른 손은 커서 빠질 일 없겠지만 조카들의 손과 발이 혹시 오르내리다가 혹은 기어 다니다가 빠질까 봐 염치 불고하고 뚜껑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착 맞는 뚜껑을 만들어 주셨다. 조카들도 장난감처럼 생긴 뚜껑을 바퀴 같다며 좋아해 서로 가지려 드는 통에 차 안에서 한차례 쟁탈전이 벌어졌다.
실물을 영접한 이상, 이제 조카들은 엄마 말을 안 듣는 일이 있으면 차박이 만능이다. "이렇게 하면 이모랑 캠핑 못 간다" 얘기하면, 평소 같으면 생떼를 쓸 일도 바로 꼬리를 내린다. 막내는 자다 깨어나 울다가도 "이모 차에 캠핑 보러 갈래?" 한 마디면 고개를 끄덕이며 울음을 뚝 그친다. 이는 마치 백신 접종을 장려하기 위해 어깨에 하얀 밴드를 붙인 백신 주사 맞은 펭수 조각상을 광안리 백사장에 세워 놓은 것과 같았다. 실로 차박은 사뭇 펭수의 위력 못지않았다.
큰조카는 아끼는 카카오 프렌즈 인형을 캠핑 때 꾸미라며 망설임 없이 내준다. 비록 손은 서슴없이 내밀었지만 인형을 부여잡은 떨리는 손아귀의 힘은 쉽사리 풀지 못하며 "이모, 캠핑 갔다 와서 꼭 다시 돌려줘야 해"하고 혹여나 이모가 아끼는 예쁜 인형들을 탐하여 그대로 납치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염려를 가득 담은 눈길로 재차 그럴 일 없다는 확답을 몇 차례 받고 안심한 뒤에서야 지만... 조카들에게 차박은 가히 펭수에 대한 애정에 버금간다.
펭수의 다채로운 변신
그렇게 예고편만 몇 번 띄우다 마침내 떠난 조카들의 실전 차박. 조카들을 위한 차크닉으로 공원으로 나와 보니 아이들에겐 특별한 놀이기구가 없어도 자연과 차박이 벗이 되고, 때론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편안한 쉼터가 되어 주기도, 재미난 놀이공간이 되기도 한다. 매일 이동하는 목적으로 올라타기만 했던 차가 이제는 편안하고 안락하게 쉴 수 있는 흡사 집과 같은 공간으로 트랜스포머와 같은 차의 변신이 신기했던 탓인지, 귀찮을 법도 할 텐데 조카들은 낚시 의자에 앉으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연신 제 키만큼 되는 차를 번거롭게도 오르내린다. 템플스테이에서 스님이 되어 묵언수행도 했다가, 갯벌에서 뻘짓도 했다가, 신인 범이를 띄우려 펭수매니저를 자처하기도 하고, EBS 사장님 김명중을 연신 외치는 시 한 편을 손수 써 시인이 되기도 한 변신의 귀재 펭수만큼이나 차박의 변신은 다채롭고 매력적이다.
차박만 있으면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각종 어록을 남기며 남다른 인기를 자랑하는 펭수가 남부럽지 않다. 공원에 방목하듯 풀어놓으면 알아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마음까지 뚫리는 듯한 탁 트인 푸른 풍경과 간간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좋네"를 연발하던 언니와 형부는 원터치 텐트와 의자를 탐내며 하나씩 장만해야겠다고 이름을 사진으로 담아간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훔치며 좋은 시간을 선사한 차크닉.
조카들이 오기 전, 후의 차박 셋팅 변화와 차크닉 주변 전경
조카들은 훗날 오늘을 추억하며, 조카들의 자식들에게 (미래에는 어떤 형태의 캠핑으로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하는 때가 올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