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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Jan 10. 2022

탱고를 낳았다

글 출산과 육아 중이신가요?

   맑은 하늘에 소풍을 가고 싶어 갑자기 친구를 호출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늘 그렇듯 격식을 차리지 않고 언제 만나도 어제 만났던 것처럼 그 만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항상 같이 보는 다른  멤버는 지금쯤 육아와 명절 시댁 방문으로 한참 바쁠 것임을 알기에 그녀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그렇게 갑자기 날이 맑아서 급벙이 열렸다. 오랜 친구들 중 그녀는  싱글인 멤버이다. 피크닉에 진심인 오늘 나의 마음을 그녀가 헤아려 주기라도 하듯 다소 먼 길도 성격만큼 시원스럽게 달려와준다.


외국은 안나 가봤어도, 본 투 비 서구 마인드의 그녀.

시원 호탕한 성격에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녀는 전형적인 신여성이다.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과 탱고 동호회를 10년 동안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나가면서 이제는 동호 회생들을 강습하는 레벨이 되어 마흔을 넘어서도 꺼지지 않는 그녀의 열정,


오래간만에 즐기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학창 시절 사투리 억양을 쫙 뺀 우아한 말투로 변모한 악센트로 구 아나운서 출신답게 여러 어록을 남긴다.


나의 연애 사업이 현재 교통사고  후유증과 코로나 때문에 고전 중이다 라는 말에 "전쟁 통에도 사랑은 꽃핀다."는 상황보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그녀의 명언.

독립을 고민하는 그녀는 부모와 자식의 더부살이의 적당한 선에 대한 이야기에  "무관심과 간섭은 다른 것이다. 그러나 간섭과 관심도 다른 것이다."는 부모 자식 간은 서로 알고자 하는 관심이 필요하지만 그 관심이 간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철학.

연애와 인생의 전반적인 담화 중,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혼자 지내도 외롭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도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인생을 즐길 수 있다."


10년 동안 쉬지않고 꾸준히 탱고를 한 그녀가 대단하다는 나의 말에 "내가 아직 애는 못 낳았지만...."

흐려진 그녀의 뒷말에 이번에는 내가 응수한다. "탱고는 낳았네."


탱고 10년 차이지만, 지금도 연습을 할 때면 즐겁다는 그녀. 무언가 자기에게 맞는 취미를 찾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 취미를 오랜 기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사실 더 힘든 일인데, 삶의 활력을 줄 수 있는 취미와 오랜 시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복을 만난 것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득, 나의 취미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뜨개질, 발레, 요가, 캘리그래피, 도자기, 수상스포츠...


제법  재밌어했고 나름 문화센터 전시회에 출품(?)도 해보는 재능 발휘를 했던 적도 있지만 취미라 하기에는 기간이 일 년을 채 넘지 못하고 관두거나 일 년에 몇 번 연례행사로 되는 등 횟수가 다소 빈약하다. 그냥 나의 습자지 같은 문화생활 정도로 정의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식물 집사? 그러기엔 선인장조차도 말려 죽인 귀차니즘으로 죽어나간 화분에 일일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다 보니 불현듯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저 나의 이기적인 욕심의 부산물 정도로 명명하고 말자.


   운동도 바깥 활동도 자유롭지 못한 요즈음, 이것저것 취미 선상에 올렸다 제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내 머리에 남은 것은 오직 브런치 밖에 없었다. 요즈음은 아침에 눈을 뜨면 브런치부터 켜고 자기 전 브런치로 하루를 마감한다. 하지만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의 서툰 글솜씨의 경험으로 아직 글쓰기가 취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마치 초등학생이 일기 쓰기가 취미라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차마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취미라면 특기에 버금갈 만큼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아직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직 공식적인 취미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나의 상황과 달리, 글쓰기는 어느새 나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었다. 글을 쓰는 동안 떠다니기만 하던 나의 생각들을 브런치란 공간에 붙잡아 두며 내 오랜 꿈에 한 발짝 다가서기도 하고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운 순간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욱한 순간 쏟아내는 말보다 글은 자기 검열로 후회의 표현을 줄여주었고, 글을 읽고 쓰며 글로 위로받고 글로 힘을 얻었다. 힘든 순간 글쓰기가 나의 표현의 출구가 되어주었으며, 좋은 글귀 읽기는 또 다른 입구가 되어 새로운 생각들로 나를 인도해주었다.


    능력과 실력보다 건강을 해쳐가며 노력한 대가보다 적당한 아부와 인맥, 쇼맨쉽과 보여주기식 일하기, 술 마시기와 줄을 잘서야 비로소 인정 받는 직장 생활의 부조리에 지쳐갈 즈음, 열심히 부지런히 꾸준히 작성하면 포탈 노출도 되고 라이킷과 구독이 늘어나는 작가 생활은 나에게 훨씬 매력적일 수밖에 앖었다. 내가 한만큼 보답 받고 인정 받는 기분이다. 같은 것을 반복함에 쉽게 질리는 내 성미에 글쓰기는 그저 주제만 바꿔주면 지루함도 없었다. 나는 펜을 집어 든 순간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내 펜 끝엔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이런 여러 매력 포인트로 내 친구가 오랫동안 탱고를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할 수 있었던 만큼, 나도 앞으로 글쓰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10년쯤 꾸준히 글을 쓴다면 나의 미천한 실력에서 자유로워질 만큼, 온전하게 글을 즐기며 당당하게 나의 취미는 글쓰기라고 말할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아직은 그저 용기가 부족하여 홍길동 같은 글들을 그저 낳고만 있는 나는 언젠가 자신 있게 나는 한 편의 글을 낳았다고 나의 글들의 출생의 비밀을 떳떳하게 전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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