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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Jan 01. 2022

어쩌다, 마흔 앓이

모순이 비로소 이해되는 나이

   내 인생에서 절반 정도의 터널을 지나오자, 나는 비로소 세상에 가득찬 모순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청개구리라도 된  마흔의 기로에서 모순은 자석보다 더 강한 끌림을 가지고 있었다. 더이상은 젊음도 아닌, 그렇다고 늙음도 아닌 그 적당한 나이듬에서 젊음의 열정과 늙음의 노련함을 모두 가진 마흔. 정반대로 서로 등을 맞댄 듯한 그 상반되는 두 단어의 조합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키게 만들었다.

시작인 끝

게으른 열심

부지런한 나태

빈둥거리는 성실함

강한 약함

열정적 게으름

정직한 거짓말

뜨거운 냉정

단단한 부드러움

빠른 느림

천천한 민첩함

밝은 고뇌

시끄러운 고요

조용한 번잡함

긴 짧음

시린 따스함

환한 어둠

화려한 단조로움

익숙한 새로움


   모순은 어쩌면 서로의 다른 얼굴이지 않았을까?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매번 그저 같을 수만은 없는 시시각각 바뀌는 얼굴의 표정처럼 실은 하나의 존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마흔에서의 나는, 모순이 실은 공존의 다른 모습이라 해석하고 싶다.

   마흔에는 젊은 시절의 열정의 패기와 연륜에서 배어 나오는 적당한 나태한 게으름이 함께 공존한다. 어느 때보다 화려한 듯, 어느 때보다 단조롭다. 밝음과 어둠, 긍정과 고뇌가 늘 함께한다. 많은 시련을 겪은 뒤 겁과 두려움에서 배어 나오는 방어벽과 철벽으로 때론 단단하게 굳어 버리며 공격을 튕겨 버리기도 하지만, 많은 경험을 통해 체득한 유연한 듯, 무른 듯, 부드러움으로 시련을 물처럼 흘러 보낼 힘도 함께 지니고 있다. 마흔은 그렇게 차갑고도 뜨겁다. 빠르면서도 느리다. 그리고 짧고도 길다.


   나는 지금 모순과 공존이 함께 하는 마흔 앓이 중이다. 열병처럼 한차례 앓고 맞이 할 마흔, 과연 끝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마흔 앓이 중인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또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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