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을 하러 온 서울에 올라오신 아버지. 오자마자 호텔 뷰라고 호들갑을 떨며 전화하신 아버지 말대로, 병원답지 않게 멋진 뷰가 여기에 왜 왔는지를 잠시 잊게 해 준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버지는 늘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반이고, 거나하게 취해 있는 모습이 반이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날 뿐 아니라 180cm의 큰 키에 호남상인 아버지는 늘 인기가 많아 어디서나 환영받으셨다. 그러나 사랑받는 사람이었기에 맨 정신의 아버지는 거의 남이 만났고, 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만취한 아버지가 대부분이었기에, 난 술이 웬수라고 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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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왔어!"
양손을 흔들며 반갑게 나타는 나에게 아버지는 "소풍 왔냐"며 핀잔을 준다. 걱정되었던 마음도 잠시, 여전한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낯선 곳에서 우리 둘이 의지하여 밥도 먹고, 잠도 자는 것이 어쩌면 캠핑과 비슷하지 않나. (물론 실제로 아빠와 캠핑을 가본 적은 없다. 사는 게 바빠 시간도 돈도 여유가 없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환자복을 입었을 뿐, 감사히도 아빠는 겉보기에 예전 건강하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오자마자 나는 2박 3일을 머물 채비를 하며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산다. 독서를 좋아하는 우리 부녀이기에, 무료한 병원 생활 3일 동안 함께 읽을 책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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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주방에 소금이 없어 못 넣나 싶은 맹맹한 병원밥에 혹시 몰라 싸온 유부 초밥을 더해, 좁디좁은 간이 책상이 꽉 찬다. 그나마 "너 더 먹어라", "더 드세요" 수저가 서로에게 반찬 그릇을 디민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편의점 얼음 컵에 커피까지 대령한다.
"가지가지한다."
"잘해줘도 난리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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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이 없는 우리인데, 6인실 병동에 오늘따라 코 고는 사람이 없어 적막함이 흘렀기 때문일까, 취업이 되지 않는 동생 이야기에서 시작한 대화가 아빠의 첫 취업에서 지금까지 이르더니 다시 아주 어린 시절로 되돌아 흘러간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이 되듯, 암 수술을 앞둔 아버지의 긴장을 풀어주려 듣는 척하던. 들어나 보자던 이야기에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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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애양원 알지? 거기 입원하셨어. 다리를 못 써가지고. 그때는 그 병원에 가는 길이 되게 구불었어. 고구마밭을 지나고, 돼지 키우는 농가가 있고. 병원 앞에 바다가 있었어."
아빠는 그 길이 진짜로 보고 있는 듯하다. 간이침대에 누운 내 얼굴 위쪽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동자가 스크린의 한 점을 응시하는 듯 살짝 올라간다.
"하얀 백사장에 파도가 치고 바다가 넓디넓었어. 그 병원 가는 길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버스 타고 엄마랑 가는 그 길이 생각나. 엄마랑 같이 병원에 가면 말이야. 얼마나 좋은 줄 아냐?"
우리 아빠는 말이다, 재미없을 때는 '허허' 웃고, 진짜 재미있으면 '낄낄' 웃는다. 낄낄 웃는 아빠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같다. 아직도 병원 외출이 즐거웠던 그 촌놈, 그 초등학생이 아버지 안에 있나 보다.
" 엄마가 소먹이라고도 안 해, 논에 가라고도 안 해. 바닷가에서 놀면 되거든. 옷도 그래. 병원에 가는 데 꾀죄죄한 옷 입으라고 하겠니? 깨끗한 옷 입혀준단 말이야. 어쩌면 새 옷을 입을 수도 있어. 새 옷 입고 놀면 땡이라는 거야. 그런데 그 좋은 걸 형은 싫어했단다. 멀리 가는 걸 싫어했을 수도 있지. 형이 안 가서, 내가 더 자주 갈 수 있어 정말 좋았어. 엄마가 꼭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너무 웃겨서 킥킥 웃는다.
"아니 친구도 없을 텐데 누구랑 놀았대."
"아 그 마을 애들이 다 있어, 가면"
"넉살 좀 봐. 미치겠다."
"난 거기 가도 대장놀이만 했어."
40년도 지난, 허세 가득한 영웅담. 병실의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게, 우리는 소곤소곤 대화를 한다. 참나, 참나, 하고 자꾸만 피식 웃음이 난다.
"나는 말이야, 아버지가 다리를 다쳐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그냥 버스 타고 신났던 기억. 그리고 바닷가에서 그 동네 애들이랑 깔깔거리면서 놀았던 거. 난 그냥 놀러 갔던 거야, 그게 참 신났어. 아버지야 아프든지 말든지. 우습지?"
아버지는 입꼬리가 또 씩 하니 올라간다. 입이 커서 이가 20개쯤 보이는 아주 환한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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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튼 발이 쳐진 병실이, 오늘따라 환자가 적어 조용한, 운도 좋게 코 고는 환자 하나 없는 이 병실이 우리 둘의 캠핑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바깥으로 보이는 잠실 롯데타워의 야경이 아름답다. 아닌 척했지만 나는 이 시간이, 아버지의 보호자로 삼성 병원으로 온 오늘 밤이 즐거워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술자리에서 남들을 재미있게 해 주던 아버지가 오늘은 나만을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자 않은가. 우리는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같이 과일을 먹고, 책을 보고 또 수다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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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자신도 아버지의 병실에서 행복하셨다는 고해성사를 공감한다. 이 사실을 아버지께 무덤까지 비밀로 하고 싶다. 오직 비탄만이 가득할 것처럼 보이는 암 병동 어딘가에 나의 비밀스러운 행복의 한 조각이 잠시 머무를 수 있음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걱정에 잠못드는 아빠와 즐거운 대화에 내심 기쁜 내 모습이, 할아버지 아프실 적 철없이 나가노는게 좋았던 아빠와 정말 붕어빵이다. 부전자전.
우리 정말로 캠핑가자. 아빠 수술이 잘 되면, 꼭 그렇게 하자. 그럼 그때는 "오늘 나 정말 행복하다"라고 떳떳하게 소리 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