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성은아. 게 좀 더 떠다 줘라. 할아버지가 너무 잘 드신다."
숙모는 나이가 50이 되어도 예쁜 흰 원피스를 입고 시골 댁에 오신다. 시골집이 흰 원피스랑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지만 아직도 소녀 같은 미소를 가진 숙모님께는 찰떡같이 어울린다.
"네, 여기 있어요."
할아버지는 거동이 어려우시다. 90이 다 되어 가실뿐더러 심장도 안 좋으셔서 혼자 하실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숙모님은 양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게 살을 예쁘게 발라 할아버지 앞에 놓아드린다.
"아버님, 맛있으시죠?"
이때, 벼락같은 할아버지의 호통이 떨어진다.
"그만해!"
한순간 부엌은 정적이다. 할아버지는 몸도 성치 않으신 분이 목소리는 기차 화통이시다.
"며느리가 어디 시아버지 드시는데 그걸 다 발라주고 앉아있어! 내가 다 할 수 있어, 놔둬!"
손이 얼어붙은 숙모는 얼굴이 새 빨개지셔서 방으로 들어가신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도 성질이 괴팍하셨는데, 나이가 드실수록 더하시다. 자존심이 강한 양반이라 며느리가 노인네 취급하는 것이 불편하셨던 것일까. 얼어붙어 있는 것도 잠시, 차에서 핸드폰을 놓고 와서 찾으러 간다는 숙모님을 따라잡으려는 나를, 엄마와 작은 어머니가 말린다.
"잠시 둬."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던 숙모님은 눈물을 꽤 흘리셨는지 눈과 코가 빨개져서 마당 한편에 자리를 잡으셨다. 마당에는 불을 피워두고 바비큐가 한창이다. 이제는 흰머리가 더 많으신 작은 아버지가 숙모를 쓰다듬으신다. 게 살을 발라드리다가 뜬금없이 불벼락은 맞은 숙모님. 뭐라 다들 말은 못 하고, 맥주를 따르고 고기를 구워 숙모님 앞으로 자꾸 들이민다. 그 와중에 서투른 염색을 해드린다고 손톱까지 까매진 숙모님의 손이 선명하다. 명절이라 예쁘게 해드리겠다고 목욕도, 염색도 도와드린 것이다.
"갑자기 무안해서 눈물이 난 거야. 괜찮아."
명절은 왜 좋다가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꼭 사건 사고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미워져서 나는 할아버지 용돈 드리려고 봉투 가져왔는데, 안 드리고 그냥 가지고 가겠다고 숙모께 말을 붙인다. 제 엄마가 말도 안 되는 혼쭐이 났는데도 사촌들은 오히려 할아버지에 대해 말이 없다. 어린 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신 정이 깊어 우리는 차마 조부모님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숙모,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저 같았으면. 그냥 차 타고 집에 갔을 거예요. 사과받을 때까지."
"그러지 마라, 저 연세에 저렇게 살아계신 것이 감사하다. 나는."
정말로 알쏭달쏭하다. 이게 아무 잘못도 없이 길가다 뺨 맞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숙모님의 눈은 나이답지 않게 참 순수하고 맑다.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게 될 거야."
모를 것 같다. 방 안에 앉아 꿈뻑꿈뻑, 손발이 부어올라 앉아있는 할아버지. 부엌 식탁에 앉아 숙모님들은 '예전에도 아버님이 저러게 소리를 질러서 힘든 적이 있었지, 그래도 이럴 때는 참 감사했는데'하고 30년 가까이 되어가는 결혼 생활을 회상하신다.
찢어지게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지내느라 아버지와 부자의 정보다는 전우로서의 정을 더 깊게 느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이다. 할아버지께 뭐라 말씀은 못 드리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숙모님의 눈치를 본다.
"여보, 나 아버지께 받을 것도 없어. 잘 해드리지 마. 그럴 필요 없어."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작은아버지가 숙모님께 실없는 소리를 하자 숙모님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까르르 웃으신다. 맘에 없는 농담이나마 속을 푸는 데는 도움이 되었나 보다.
여전하다. 대학에 막 들어갔을 무렵에는 가부장적인 우리 집안이 참 싫었다. 시아버지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도 여전히 시아버지를 사랑하는 며느리라니. 시대관에도 맞지 않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답답스러운 이야기가 듣고 싶겠는가. 이런 일이 있었을 때마다 내가 더 나서 화를 내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흐름이 이들의 역사인 것을 어쩌랴. 남들은 이해 못해도 이들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올 추석, 30대가 다 되어서 인지 우리의 관계가 깊어가서인지 이토록 유야무야 넘어가는 가족의 화해를 오랜만에 밉지 않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