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과 조직문화진단
날이 쌀쌀해지면 습관을 좇아서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건강검진을 받는 거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일반 검진이든, 회사랑 연계된 검진 센터에서 받는 종합검진이든 거의 매년 검진받았던 것 같다.
건강검진, 영어로 하면 헬스체크(health check), 말 그대로 현재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일이다. 피검사에서부터 시작해서 엑스레이 촬영, 심전도 측정, 위내시경과 대장 대장내시경까지 몸속 구석구석을 살핀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험 요인을 조기에 파악해서 빠르게 치료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회사도 조직의 건강 상태를 매년 점검한다. 보통은 조직문화진단(Culture Survey)라는 이름의 설문을 구성원들에게 보내고 그 결과를 종합해서 분석하여 현재 조직문화 상태를 확인한다. 마치 건강검진과 비슷해서, 조직 헬스체크라고도 불린다. 요즘은 그 중요성이 커지다 보니, 일 년에 한 번 하는 정기 진단 외에도 수시로 하는 설문조사도 있는데, 이를 펄스 서베이(Pulse Survey)라고 부른다. 그 이름처럼 조직의 맥박을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다.
이런 진단을 통해서, 회의 문화에서부터 시작해서 리더의 의사 결정 방식, 업무 배정과 관리 방식, 시스템과 도구까지, 일터 전반의 현재 상태를 조망하기 위한 질문들을 통해서 구성원의 인식을 살핀다. 전년도 데이터와 비교해서 항목별 지표 변동도 살펴보고, 항목 간 유의미한 차이에 주목해서 더 중요한 이슈를 찾아낸다.
그런 거 보면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검진과 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문화진단은 닮아있다. 먼저, 정확하게 현재 상태를 진단해야 한다. 그리고서 그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장내시경을 통해 용종이 발견되면 제거해야 하고, 위내시경을 통해 초기 위암이 발견되었다면 거기에 적절한 항암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문화진단을 통해 세대 간 의사소통의 이슈가 발견되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세대 간 이해를 촉진하는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이 이에 대한 ‘처방’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런데 매년 검진받을 때마다 결과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만성질환에 무뎌지는 것처럼, 조직문화진단에서도 매번 나오는 이슈들에는 둔감해지기 십상이다. 앞서 예를 든 ‘세대 간 소통’ 이슈도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인데, ‘교육도 해보고 워크숍도 해봤는데 별 효과 없더라’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 집단적 무력감에 빠지면서 변화 활동 자체를 거부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진단이 효과적인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처방적 활동이 잘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을 통한 이해’를 높이는 일이라 생각된다. 조직 내 각 구성원은 자기가 속한 세대, 하부조직, 역할에서 조직 내 타자를 바라보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것이 인지적 공감이다. 결국, 인지적 공감을 통해 타 구성원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때 비로소 ‘진단에 따른 처방’이 작동하게 된다.
마치 건강검진이 질병을 없애주지 않듯, 조직문화진단 자체가 조직 내 이슈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정확한 진단은 시작이고 본격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건 적절한 개입 활동인데, 그 시작은 구성원들의 인지적 공감을 높이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강연을 들으며 영감받아, 조직문화 전문가 관점에서 건강검진과 조직문화진단을 비교하여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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