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을 읽다가
슬쩍 밀려들며 부풀어 오르는 모시옷 빛깔 커튼을 바라보며
뮤지션 요조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눈으로 따라 읽다가 스르륵 선잠이 든다.
눈 앞에 아이패드엔 ‘오디오북이 끝났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있고
잡다한 소리를 다 잡아먹은 에어팟 덕분에 어릴 적 어느 초여름날 마루에 고요히 누워 낮잠을 자던 나를 만난다.
그때는 그것이 행복인지, 일상인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기억을 소소한 행복으로 이름 짓는다.
엄마 인생의 절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시절을 이야기하는 작가 김애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지금 그런 고점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이차방정식의 곡선처럼 인생이 살아지는 게 아닐 테지만
지금의 행복감이 새삼 크게 다가오는 이 순간, 지금이 그 꼭짓점이 아니길 소망한다, 더 오르진 않더라도 평평한 구릉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