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5주년 기념일을 보내며
만 15년.
한 사람과 혼인을 서약하고 반 세대가 흘렀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라고 일컬으니 그 절반이라 반 세대라 불러본다.)
그 사이 희끗희끗 흰머리도 늘고 주름도 생겼지만 돌아보면 그리 오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수없이 많은 낮과 밤 동안 해온 많은 이야기들이 밤하늘 은하수처럼 반짝거리는 걸 보면 그 시간의 질량이 새삼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5주년 결혼기념일, 뭔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맛난 음식을 먹여야 할 것 같은 오늘이지만 ‘보통의 날’처럼 보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아침을 먹고 (재택근무라 거실로) 출근하고. 등교하는 아이랑 인사할 수 있는 호사도 누리고.
점심엔 아내와 집 근처 스시 맛집에서 초밥 세트를 테이크아웃해서 맛나게 먹었다.
퇴근하고 저녁엔 (눈다래끼로) 안과에 들렀다가 케이크 전문점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 사 와서 촛불을 불려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눈다래끼 제거 시술(눈꺼플 안쪽을 절개하는 시술)을 받은 탓에 눈이 퉁퉁 부어 케이크를 못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으면서 딸이 수학학원에서 배워온 사고력 문제를 (아이큐가 높아야 풀 것만 같은 문제들 ㅋㅋ) 이야기하며 풀었다.
못 사 온 케이크는 일요일에 사서 소소한 축하 파티를 하기로 약속하고.
그렇게 결혼 15주년 기념일이 지나간다. 원래 이벤트를 잘 챙겨 온 나인데, 기념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아내를 슬며시 닮아가는 것만 같다.
앞으로 20주년, 30주년, 50주년도 기대가 된다. 그 날들이 특별해서라기 보다는 함께 해온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다.
점점 더 커져가는 감사함을 마음에 품고 오늘도 여느 날처럼 살아간다. 내일도 그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