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황정연
평발. 영문 의학명으로는 flat foot.
겉으로 보기에 발이 평평한 건데 안을 들여다보면 발바닥 아치가 무너져 있는 증상을 평발이라 한다. 생각해보면 난 유전적으로 평발을 갖고 태어났다. 아버지도 평발, 내 동생도 평발. 아이가 태어날 때 발가락 개수를 세어본 게 아니라 평발인지 아닌지를 봤다는 아내의 얘기에 웃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한 발 아치를 갖고 있다.)
평발 탓인지 어릴 때부터 난 달리기에 소질이 없었다. 단거리뿐만 아니라 장거리 달리기엔 더 취약했다. 초등학교 시절, 각 학교에서 붐이 일었던 ‘오래 달리기’는 당시 내게 화두 같았다. 당시엔 그냥 내가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했지, 평발 탓에 발이 쉽게 피로를 느끼고 통증까지 느끼다 보니 발을 주로 쓰는 스포츠 활동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무너져 있는 발바닥 아치에서 적절히 역할을 못해주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면서 발바닥 근막과 발목 관절 인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얼마 전엔 만성적인 피로가 누적된 발목 인대에 심한 통증이 있어서 발목 인대 교체 이식 수술을 받을 뻔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평발인 까닭에 걷는 것조차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난 걷기가 좋다. 걷다 보면 기분이 슬슬 좋아지면서 잡념이 사라지고 오롯이 ‘지금, 여기’를 살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요가 플로우를 따라 자세(아사나)를 취할 때 느끼는 기분, 마음과 같다.
가까운 분들의 직접적인 도움과 마음의 응원으로 발목 통증이 잦아들 즈음,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무리하지 말자, 욕심 부리지 말자.’를 가슴에 품고 ‘발목 다치지 않게 조심하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다시 시작한 요가. 선생님의 섬세한 지도와 응원의 말에 무리하지 않고 내 템포로 요가를 해올 수 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김부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몸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몸 전체의 발란스를 잡아가면서 다리와 발목도 점점 튼튼해지기 시작했다. 한때 큰 수술까지도 생각했던 발목에 힘이 붙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마음먹고 장거리 걷기, 장시간 산책에 도전했다.
보통 점심시간에 회사 짐나지움에서 스트레칭 중심으로 운동을 하곤 했는데 코로나 19 확산에 문을 닫아 꽤 오랫동안 점심시간에 몸을 쓰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사동기랑 같이 점심 먹고 회사 옆 여의천을 걷게 됐는데 그 상쾌함과 기분 좋음이란! 지금도 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을 마음에 담고 걷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하지만 숙제하듯 하지 않고 여행하듯 했다는 점이 달랐다.
그렇게 여행하듯, 놀러 가듯 시작한 장거리 걷기가 습관이 되어 이젠 거의 매일 걷는다. 오늘은 아침, 점심, 저녁 모두 걸었더니 기분이 더 좋다. (지금도 걷고 막 들어와서 이 글을 쓴다. ㅎㅎ)
돌아보니 지난번 참석했던 명상여행자 유녕님과 요가 인스트럭터 고운님이 리딩한 ‘강화도 요가명상여행’의 경험도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Earthing이라고도 불리는 ‘맨발 걷기 명상’을 해보면서 지구와 연결되는 듯한 기분 좋음을 느꼈고, 그 이후로 제주도, 원주에서도 나의 Earthing은 계속되었다.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며 그가 달리 보였고 더 멋져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장거리 걷기는 나와는 먼 일이라 선을 그었다.
평발이라 두려웠다. 걷는 게, 뛰는 게. 아직 뛰는 건 발목에 무리일 듯싶어 자제하고 있지만, 걷기는 꾸준히 해보려 한다. 산책, Earthing, 장거리 걷기, 그 어떤 형태라도 좋다. 난 걸을 테다. 오늘도, 내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