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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자 정연 Apr 24. 2021

17년차 인사담당자의 고백

영화 <노예 12년>에서 발견한 나의 이야기

제목이나 포스터만 봐도 혹해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 반면, 별로 보고 싶지 않거나 보기 싫은 영화가 있다. 대표적으로 잔인하거나 괴기스러운 공포물이나 스릴러물은 애초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꿈에 나올까  무서워서이다. 자칭 영화 마니아라고 말하면서도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거의  적이 없다. 한편 무서운 껍데기를 갖고 있진 않지만, 제목이나 시놉시스에서 너무 무거운 사회 담론을 다루는 영화도 보기 꺼리곤 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오는 후폭풍에 마음이 너무 힘들어져서 몸까지 아픈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공감(Sympathy)이란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잘하면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인데, 내게 공감력이 좋다는 건 그만큼 타인의 삶의 이야기에 내 감정이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기 쉽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도 마찬가지여서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도 풍덩 빠져서 죽을 듯이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 포스터나 시놉시스를 보고 과몰입을 안겨줄 만한 영화를 슬며시 피하곤 했다.


영화 <노예 12년>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노예 제도가 뭐냐고 물어본 초등학생 딸아이의 질문에 좀 더 적확한 답을 해보려고 노예 제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콘텐츠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이 영화 제목을 떠올린 것이다.  딸이랑 같이 볼 요량으로 영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만 15세 이상 관람가여서 아쉬운 마음으로 창을 닫으려다가 나라도 봐볼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사탕수수밭에서 참혹하게 노동하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마저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주인공이 ‘자유인 시절’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말 그대로 ‘보다가 멈추기 어려운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해진다. 주인공 솔로몬은 ‘자유 흑인’ 바이올린 연주자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뉴욕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다가 그만 납치되어 농장에 노예로 팔려 가게 된다. 이후 12년이란 세월 동안 두 명의 백인 주인을 차례로 모시며 괴로운 삶을 살 게 된다. 희망을 끈을 놓아버릴 법한 처참한 상황을 버텨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캐나다인의 도움으로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다. 전형적인 서사를 담아낸 듯한 영화였지만 보는 내내 더 몰입하게 된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자유로운가?’


하루아침에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된다면 어떤 심경일까?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감정과 육체적 괴로움까지도 화면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자유의 소중함은 그 박탈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더 값지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다. 지금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도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면서 ‘나는 지금 자유로운가?’라는 묵직한 질문도 던져보게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는 적어도 ‘외압에 따른 물리적 인신 구속적 상태’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면 그 답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맺고 있는 계약 관계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노예 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근로계약 관계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보면 본질적인 유사성도 분명 내포하고 있다. ‘종속 노동은 근로자가 누군가에게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제시한 거래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여 계약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그 노동력을 자신의 신체, 인격과 분리하여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력 제공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된다.’라고 이야기한 노동법 학자 임종률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결국은 오늘날 우리 역시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상당 부분 종속된 상태에 있다 보니 영화 속 흑인 노예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새삼 발견하게 된다.


특히나 요즘처럼 저성장기에, 취업난까지 가중된 상황에서 근로자, 구직자는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더욱더 종속적이기 쉽다. 게다가 개인이 가진 지식과 기술이 조직을 떠나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반작용으로 이른바 ‘경제적 자유 상태’에 이르기를 갈구하는 청년들이 더욱더 많아졌다. 주식시장으로, 부동산 시장으로 그들의 관심과 시간과 돈이 쏟아져 흘러 들어간다. 이는 비단 청년들만의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장년층에서도 그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기 때문이다. 다만 기성세대로부터 프런티어 정신을 요구받는 청년들에게 그 모습이 더 극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백인 주인의 말과 행동을 천천히 떠올려본다. 노예를 부려 목화 농장을 운영하는 엡스는 악독한 농장주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예는 자신의 재산’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자신의 소유 대상을 ‘함부로’ 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손에 땀이 나면서 주먹이 절로 쥐어진다. 엡스가 나쁜 놈이라면 또 다른 농장주 포드는 ‘멋진 허울에 갇힌 이상한 놈’으로 부르고 싶다. 첫번째 농장주 포드는 흑인 노예들을 최소한 비인간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흑인 노예로 자신에게 팔려 온 주인공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감독관한테 죽을 뻔한 주인공을 살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고 말하며 도와달라는 주인공의 말에 포드는 자신의 빚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다시 노예로 팔아넘긴다. 마치 구원자처럼 보이는 백인 주인이었지만 결국 그 역시 자신을 둘러싼 사회환경, 제도적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자기 스스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나의 아이히만 되지 않으려면


이 지점에서 떠오른 개념이 하나 있다. 히틀러 수하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독일 전범 ‘아이히만’이 자신은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는데, 이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적한 ‘악의 평범성’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속해 있는 시스템에 순응하여 당연한 역할을 수행하는 농장주 포드를 보며 ‘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아이히만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이 점에서 노예 제도 폐지가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캐나다인 베스의 말 그리고 실천적 행동과 극적으로 대조된다. 당연한 듯 보이는 사회 제도와 관습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고 개선과 개혁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저항’하고 ‘행동’해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이미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안에 피어오르는 어떤 불편함에 비릿함을 느낀다. 지난 십칠 년 동안 사람을 채용하고 배치하고 잘못한 직원을 징계하고 잘한 직원은 포상하고 육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살아왔다.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인사담당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에 뿌듯했다. 그럼 나는 ‘좋은 인사담당자’였을까? 이 질문에 선뜻 ‘예’라고 답하기 어렵다. 인사 업무의 특성상 조직과 개인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가 꽤 많다. 상대적으로 힘든 일자리와 덜 힘든 일자리가 있고, 보람이 적은 일과 보람을 더 느낄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이 하고 싶은 일과 회사가 시키고자 하는 일이 다른 경우도 참 많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큰 간극을 메워야 하는 임무를 띤 나 같은 인사담당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을 자주 맞닥뜨린다. 직원의 고충을 해결하려고 하면 회사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의 성과와 이익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면 난 어떤 우선순위로 일 해왔나 곰곰이 생각해 본다. 보통은 회사의 기준, 규칙이라는 걸 읊어대며 구성원 개인의 수용을 암묵적으로 유도해왔다. 때론 강요하기도 했다. 부드러운 모양새를 띄고 있었고 온화한 말투였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주어진 제도와 틀, 규범’ 안에서만 말하고 행동했다. 구성원 개인의 어려움을 살펴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큰 변화를 시도하거나 제도를 바꾸고자 별로 노력하진 않았다. ‘힘없는 담당자 한 명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고 푸념만을 내뱉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한편 힘이 있는 존재의 요구에는 쉽게 무릎을 꿇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지 여부보다는 내 입지에, 나에게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했다. 내 직속 상사의 상사인 경우도 있었고, 우리 팀장의 자리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노조 간부인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입김에, 요구에 한없이 무력한 ‘노예’로 주저앉았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기억들 안에서 영화 속 농장주 포드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 역시 제도와 시스템에 종속되어 살아왔구나,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넘어설 수 없는 제약요건으로 생각하며 나 스스로 그 틀에 갇혀 일해왔구나 입술로 시인하게 된다. 영화 속 악당 엡스에 분노했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감정을 농장주 포드에게서 느꼈던 건 그에게서 다름 아닌 내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이었구나 싶다.


열두 살, 아직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힘든 나이인 우리 딸에게 노예 제도를 충분히 설명하기란 내게 너무 버거운 일이다. 먼 옛날 있던 일이라 역사책에만 있는 이야기라고 거짓을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 우리 가까이에 여전히 있는 제도라고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긴 이야기를 마음속에만 담아두긴 싫다. 아이의 키가 두 뼘 더 커지고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실 아빠가 노예였다고. 그 사실을 발견하고선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왔다고.’ 고백할 것이다.


“아빠, 내일도 회사 출근해?”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딸을 가슴 가득 안아주곤 입안에 맴도는 말을 삼키며 이 밤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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