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마지막날을 떠나보내며
잠들기 한 시간 전, 오늘을 회고한다. 사실 회고라기보다는 감정 되짚어보기란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오늘 이 시간 내게 필요한 행위라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 없다.
이틀간의 여행을 마치고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은 목 근육을 타고 흘러드는 긴장감으로 시작된다. 특별히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든지, 그렇지 않은 때든지 관계없이 이런 중압감은 늘 날 휘감곤 했다. 굳이 ‘월요병’이라는 병명을 붙이지 않아도 슬며시 다가오는 이 녀석이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데도 여전히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주말에 출근하면 증상이 덜해진다는 선배들의 우스갯소리 같은 말이 참이었음을 확인했던 신입사원 시절의 경험이 주말 출근으로 날 이끌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급히 확인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 몇 가지를 해결하고 나면 바다 한가운데에서 느껴질 법한 평온이 가슴을 물들여온다. 이때의 평온함은 온전한 평온이라기보다는 언제든지 밀려들 수 있는 파도의 위험에 노출된 불안정한 평온이다. 전화 한 통이나 이메일 한 통, 그도 아니면 상사의 업무지시로 산산이 부서질 수도 있는 그런 부류의 안온함이다. 오늘도 역시 그런 평온을 잠시 누렸다가 상사의 전화 한 통으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 평온의 뒷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법정 휴게시간으로 정해진 ‘점심시간’을 맞이할 때면 어릴 때 놀이공원에서 솜사탕을 사서 받아들기 직전의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온전히 그 시간을 누리려고 애쓰는 마음에 종종 스스로가 안쓰러워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의 여유와 해방감만은 참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입안에서 금세 스르르 녹아버리는 솜사탕처럼 그 감성도 시나브로 사라진다.
사람과 조직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민감한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무거운 메시지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미묘한 어감의 차이로 오해를 빚기도 하고 단어 하나에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톤이 바뀌기도 하다 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뭔가 중압감이 느껴지는 날에는 그런 자리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꽤 자주 든다. 도망가는 나를, 멀리 달아나버리는 마음을 다시 여기로 데려오는 일이 버거운 하루였다.
오늘도 여느 월요일처럼 이런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에서 맴돌다가 의식적인 행위를 시도했다. 아이패드를 열고 지금 내 마음을 번잡하게 만드는 일들, 과제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나열하고 분류해서 한 눈에 들어오게 정리를 해봤다.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채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 페이지 안에 다 들어갈 분량이라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무엇보다도 한눈에 그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상대할 용기가 났다.
그럼에도 주저앉지 않고 오늘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떠올리고, 눈 딱 감고 하기 싫은 일도 오늘 분량만큼 한 토막을 해치우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장 해야 할 일에만 매몰되지 말자고 나 자신을 응원하기.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분야의 준비도 사부작사부작해나가기. 바로 그때 묘한 설렘과 두근거림이 슬며시 나를 찾아왔다. 듣고 싶었던 한 편의 강의, 읽고 싶었던 작가의 신간 도서 한 챕터, 응원과 환대로 채워진 인스타그램 메시지 한 통에 더 나은 하루가, 포근하고 아늑한 하루의 완성이 이루어짐을 믿게 되었다. 아니, 그저 믿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