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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행 후기가 아니예요

명상여행자 유녕과 함께 한 ‘북 스테이’

by 인생여행자 정연

긴 꿈에서 깨어났다. 비 내리는 초가을의 날씨에서 코끝이 시린 초겨울을 지나, 다시 초여름으로 한여름으로 ‘계절 여행’을 하고선 원주 어느 한옥 카페에서 눈을 떴다. 여행의 빛깔이 진할수록 여독도 더 독해진다. 벌써 마음이 시려오는 것만 같다.




‘책과 명상을 함께 하는 1박 2일 북 스테이라니.이건 나를 위한 여행이야.’ 북 스테이 포스팅을 보자마자 명상여행자 유녕님에게 참가 신청을 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자리가 없어질 걸 직감했기 때문에 고민하느라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났고, 백팩 하나 메고 원주 어느 산골에 있는 북 스테이에 발을 내밀었다.


그렇게 시작한 1박2일을 책과 함께, 명상과 함께 보냈다. 그런데 그 시간을 회고하는 지금, 떠오르는 건 함께 한 사람, 비현실적 풍경, 공감의 대화뿐이다. 서로 다른 나이, 일의 경험, 고민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 더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커다란 탁자가 되어주었다.


‘돌고래에게 배운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가장 깊은 받아들임’,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책들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떤 단어를, 문장을 마음에 품고 사는 여행자인지, 어떤 고민으로 힘들어하고 있는지, 어떤 꿈을 품고 한 걸음을 내디디고 있는지 서로가 살포시 엿볼 수 있었다. 책을 펼치고 활자를 읽어가지만, 그 너머에는 역시 사람의 이야기가 또렷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서로 느끼다가, 활짝 피어오른 캠프파이어와 함께 밤이 늦도록 대화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함께 나눈 책 그리고 캠프파이어, 대화




숲에서 깊은 호흡을 하며 ‘지금, 여기’를 마주했던 명상 시간은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나뭇잎, 찰랑거리는 소리를 마음껏 풀어내는 윈드차임 소리는 그 자리를, 그 순간을 더 환상적으로 만들어줬다. 마치 이게 현실 같냐며 엷은 웃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너무 비현실적이야.’란 말을 연신 뱉어내는 것외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 참, 진짜’라는 부사는 평소 잘 안쓰려고 노력하는 단어들이다. 너무 단선적이고 직선적이고 깊이를 담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그보다는 애둘러 다른 표현을 쓰고자 했다. 그런데 이틀 동안 ‘비현실적 순간들’을 연신 마주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 부사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북스테이 명상 여행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초록 빛깔의 소리가 가득한 터득골북샵




아이패드 파우치에 그려져 있는 오롤리데이 캐릭터를 닮은 노오란 달이, 수묵화에서 본 것만 같은 산자락 너머로 얼굴을 쏘옥 내밀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몽글몽글 피어오른 안개로 가득한 숲속에서 가만히 윈드차임 소리를 온몸을 들었던 그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은근히 자신을 태우며 방안을 가득 채운 인센트 향기와 은은하게 퍼지는 싱잉볼 소리, 나긋하지만 청초하게 마음을 울리는 명상 여행자의 목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지다가 가슴 한편에 새겨지듯 남겨졌다.


그렇게 한 시절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월을 마무리하는 지금, 아니, 유월을 맞이하는 지금, 나는 너를 만났고 이야기 나누고 호흡을 나누고 추억을 나눴다. 그걸로 이미 충분했다. 그런데도 남는 아쉬움이 있다면 편지지에 또각또각 적어 겉봉투에 넣고선 너에게 보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계절은 다시 가을로, 겨울로 이어지다가 숲 바람이 그리워지는 어느 날, 시절 인연으로 내게 다가올 걸 믿는다.


마음을 울리는 윈드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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