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련, 빗소리 감상, 책 읽기로 구성된 하루 일기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곧이어 다리도 덜덜 떨린다. 허벅지 옆에 바이브레이터를 달아놓은 듯이 덜덜덜. 이 정도 상황까지 오면 이건 힘들어서 못 하겠다 수준이 아니라, 민망해서 더 이 자세를 못 하겠다가 맞다.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마음이 솟고 극기훈련이나 유격훈련 시키는 것만 같은 선생님이 슬슬 미워지기 시작할 때 정작 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구나 새삼 발견하게 된다. 정말 힘든 순간이면 이 생각 저 생각 안 나고 이 순간, 이 느낌에만 집중하게 될 텐데, 아직 힘든 게 아니구나,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상황이구나 하는 찰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깊은숨을 후후 내쉬고 나를 살리는 숨을 헉헉 마시며 그렇게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를 세며 버티다 보면 기어코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마주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버틴다’는 것보다는 ‘그냥 이 순간에 머무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죽을 듯이 힘들고 민망함에 마음마저 후들거리는 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 그것만이 진정 이 고난을 이겨나갈 방법임을 알게 된다.
기이한 모습의 거창한 요가 아사나를 하고 나서 이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시간이 지나면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고난도의 대단한 동작을 하고 난 소회를 적은 게 아닐까 착각할 수도 있겠기에 미리 방지하고자 단서를 달아둔다고 보아도 좋겠다. 사실 오늘 요가 수련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아사나는 견상자세와 전사자세였다. 흔히 다운독, 워리어라고 불리는 자세다. 기본 중의 기본인 자세임에도 힘들게 느껴졌던 건 그 자세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흔히 ‘홀딩(Holding)’이라고 표현하는데, 말 그대로 그 자세로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때론 이렇게 ‘그대로 머무는 것’이 더 힘들구나 새삼 느끼며 매트에 손을 꽈악 밀어내고 발을 쭈욱 밀어냈다.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던 이마와 목덜미처럼 이제 땅이 젖어간다.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부터 장마라고 했던가?’ 혼잣말하다가 이내 어렴풋이 봤던 일기예보 기사를 떠올렸다. 정말 비가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린다. 꿉꿉하고 후텁지근한 느낌에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이 순간을 그대로 즐겨보리라 마음먹는다. 너무 따뜻하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는다. 창문을 반쯤 열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쏴아쏴아, 타다닥 타다닥, 딱딱딱딱, 솨아아 솨아아 ‘빗소리’라고만 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소리가 때론 화음처럼 어우러지다가 때론 불협화음처럼 어그러지듯 흘러간다. 중간중간에 쉬익 쉬익하며 물길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도 이 도시의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빗소리를 감상하며 나만의 소일을 시작한다. 가볍지만 튼튼한 스테인리스 책받침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어떤 책을 읽을까 즐거운 고민에 빠지기.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을까? 에세이 한 편을 읽을까? 환경 관련 책을 읽을까? 브랜드 관련 책을 읽을까? 부동산 관련 책을 읽을까? 그도 아니면 책에 관한 책을 읽을까? 요즘 읽고 있는 책을 한 권 한 권 책장에서 꺼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니 책 탑 하나가 생겼다. 물끄러미 제목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바라보다 보니 요즘의 내가 보인다.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떤 프레임으로 삶을 바라보는지, 누구를 동경하는지, 누구와 대화하고 싶은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내가 누구인지가 슬쩍슬쩍 비친다. 무엇보다도 책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 지어 책을 만나든지, 책으로 연결되어 사람을 만나든지, 결국 사람의 생각과 감정, 이야기와 만난다. 사람이 그리워지면 책을 펼친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을 만나고 싶다. 글을 쓰다 보면 나누고 싶고, 그 마음이 이어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처럼.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의 리듬처럼, 책을 만나면 사람을 만나고 싶고, 사람을 만나면 그 삶의 이야기가 담긴 그만의 ‘인생책’을 만나고 싶다.
요가 수련도, 빗소리 감상도, 책 읽기도 ‘지금, 여기’에 온전히 머무를 때 가능하단 걸 새삼 깨닫는다. 긴 인생길 같아도 결국 하루하루의 삶에서 쌓아 올린 지금 이 순간들만 남는다는 걸 애써 되뇌어본다.
#인생여행자 #요가수련 #지금여기 #요즘함께하는책들
이 책들이 제 삶에 들어오게 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