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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자 정연 Mar 31. 2022

보름

소리와 실존 (Sound-Existence), 몸을 매개로.

크리스마스이브 새벽녘이었다. 문밖 너머로 간간이 들려오는 괘종시계의 덩덩거리는 울림을 통해서만 물리적 시간을   있는 공간에 있다 보니 정확한 시간을  수는 없었다. 작은 창밖으로 어스름하게 오는 미명을 통해서만 시간을 가늠할  있었다. 잠이  깨서일까, 잠자리가 바뀌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오랜만에 침대가 아닌 맨바닥에서 요를 깔고 자고 일어난 탓일까? 귀가 먹먹했다. 수영하다가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오른쪽 귀가 먹먹했다. ‘먹먹하다는 단어 말고  느낌을 표현할  있는 말이 있을까?’ 문득 생각해봤다. 일물일어의 법칙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렇게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도 생각해봤다. 어쩌면 1.5평밖에  되는  작은 독방의 폐쇄적인 공간 구조가  청각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이처럼 느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방에서, 잠에서 깨어난  아닌 듯한 묘한 느낌에 사로잡혀 다시 생각과 감정 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열여덟 시간 만에 독방을 떠나 공용 식당에서 소박한 아침상을 받아 들었다. 갓 지어낸 죽 한 그릇과 사과 몇 조각이 충분한 정찬이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자리를 옮겨 커다란 마루로 되어 있는 모임 장소에 커다란 원의 한 점이 되어 방석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가 둥그런 원을 그리며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생경하다 못해 사뭇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지난밤 읽었던 책 이야기부터 요즘의 고민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이 흐르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입이 심심할 때마다 다기에 내려 마셨던 황차와 작은 창 너머로 보였던 하늘과 누런 잔디밭,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서 헤엄치다가 한 줄 한 줄 읽어갔던 두툼한 책 속 문장들만 가득했던 지난 시간이 어느덧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 순서가 돼서 마이크를 잡고 감회를 읊조리던 나는 간증하는 어떤 크리스천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간증처럼 보인 것뿐만 아니라 진정 간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롯이 홀로 존재하는 시간을 생애 최초로 맛본 자의 간증이었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의 감회가 방을 가득 채우는 동안 먹먹한 귀, 둔해진 청각은 잠시 잊혔다.


홍천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동서울 터미널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묵직한 디젤엔진의 울림과 고속도로의 쌩쌩거리는 바람 소리가 뒤섞여 항공기 이코노미석에서 느낄 법한 소음 속에 파묻혀버렸다. 백팩을 열고 까만색 소니 헤드폰을 꺼내 머리에 쓱 써본다. 전원을 켜고 노이즈 캔슬링까지 활성화하니 이내 조용해진다. 조용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고요함이 지난밤 독방에서의 소리 없음을 잠시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와는 다른 인조의 맛을 풍기고 있었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은 소리가 파장인 것에 착안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소리를 감지해서 동일한 형태의 파장을 일으켜 소음을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조용한 방 안에서 느끼는 고요함과는 다른, 거세된 ‘무의 소리 흔적’만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크리스마스를 지나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 날에도 오른쪽 귀는 여전히 물이 꽉 들어찬 것처럼 먹먹했고 윙윙거렸다. 새벽녘에 일어나 SRT를 타고 천안아산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아산사업장에 도착했을 때 옆을 돌아보니 불안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팀장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할 때 소리가 잘 안 들려서 나도 모르게 오른쪽 귓바퀴에 손바닥을 펼쳐 덧대야 어느 정도 소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나를 더 불안하게 했던 건 내 몸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의 공간 감각이 전혀 달라졌다는 것이다. 왼쪽 공간은 여전히 넓게 펼쳐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오른쪽 공간은 찌그러지고 구겨진 듯이 느껴졌다. 삽시간 불안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종종걸음으로 사내 의원을 찾아 의사 선생님께 내 증상을 설명해 드렸더니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표정은 심하게 찌그러졌고 다급한 목소리로 어서 시내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아산 시내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았고 또 한 번의 의사 선생님의 일그러진 표정을 발견하고 나서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병원 예약실에 전화를 했더니 아무리 빨라야 열흘 뒤에나 진료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을 했더니 일단 병원 이비인후과 접수처에 이야기해놓을 테니 그쪽으로 가서 다시 부탁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약하지 않으면 진료를 받기 어려운 대형병원에 무작정 달려가서 진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의지보다는 본능에 가까웠다. 예약된 진료가 모두 끝난 뒤 응급 환자로 분류된 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정밀검사를 받고 다시 의사 선생님을 대면했을 때 비로소 그 정체 모를 귀 먹먹함에 ‘돌발성 난청’이라는 병명을 받았다.


돌발성 난청, 이름부터 생소한 이 병은 말 그대로 갑자기 생긴 난청을 말했다. 주로 한쪽 귀에서 발병하고 낮은 음역이 안 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저음역 청력이 갑자기 떨어질 때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먹먹하고 수영장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비슷한 울림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속이 시원했다. 삼일 동안 나를 괴롭혀온 알 수 없는 증상에 이름이 붙여지고 누군가 이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내게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끝나지는 않았다. 이 질병의 현상은 알지만,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것, 그래서 현대의학으로 정확하게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 안의 불안이 두려움으로 바뀌었을 때는 감정의 영역이었지만, 이제 두려움은 현존하는 공포로 커다란 코끼리가 되어 내 어깨에 올라타 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 짧은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일단 고농도 스테로이드제 알약을 보름간 처방해드릴 테니 복용하세요. 효과가 있는지 본 뒤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고막에 직접 스테로이드제 주사를 주입할 겁니다.’ 진료실을 나오니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A4 용지에 빼곡하게 쓰여 있는 주의사항과 부작용, 복용 방법을 하나씩 설명해주셨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날에는 스테로이드제 알약 두 알에서 시작해서 점점 늘려서 여덟 알까지 복용하다가 다시 서서히 줄여서 두 알로 마무리하는 ‘계단형 복용법’을 알려주셨다. 복용 시간과 날짜를 엄수해서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한 부작용에 고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엄포를 놓으시는가 했는데, ‘복용 방법과 부작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라고 적혀있는 문구 옆에 싸인까지 하라고 하자 겁이 덜컥 났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몸 전반의 면역력을 인위적으로 급격히 상승시켜서 돌발성 난청이 해소되길 바라며 진행하는 치료법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현대의학으로 원인을 모르는 병이라 치료 방법도 몰라서 막연히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서 낫기만을 바라는 상황에 덩그러니 홀로 놓여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오른쪽 귀 청력은 현저히 떨어져 귀 먹먹함은 계속되었고 청각으로 감지했던 나의 오른쪽 공간감은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것과 공간감이 왜곡된다는 것, 이 둘은 현상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이제 난 회사생활을, 사회생활을 잘해나갈 수 없게 된 것일까?’


복약 지도서에 나와 있는 데로 시간에 맞춰서 약을 먹었다. 첫 하루 이틀은 큰 어려움이 없어 지나가는 듯했는데 약용량을 늘려가자 몸에도 반응이 왔다. 먼저, 집중해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말라고 하셔서 손에서 일도 다 내려놓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나 영화를 보며 지냈는데 그마저 할 수가 없었다. 최대 용량으로 복용하기 시작하자, 만취 다음 날 강력한 숙취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의 몸처럼 되어버렸다. 깜깜한 방에 홀로 누워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일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암흑의 시간을 견디고 버티다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이 사실 하나를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삶을 살펴보고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고 절대자에게 기대어 기도하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고작 조그마한 흰색 알약 몇 알에 무참하게 부서져 가는 내 육체를 몸 밖에서 바라보는 기분은 참담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꽤 오래 듣고 살아왔지만, 무력해진 몸덩이란 그릇 안에 담긴 무기력해진 마음이 작은 촛불 아래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성경 요나서를 보면 자기 뜻대로 가다가 제비뽑기에 걸려 바다에 던져진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다에 빠졌을 때 큰 물고기가 삼켜서 사흘 밤낮을 물고기 배 속에서 있다가 육지에 토해졌다고 했다.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흘 밤낮을 캄캄한 물고기 배 속에 있을 때 요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소리가 안 들리는 귀의 결함이 독한 약 기운을 통해 내 몸과 마음에 실존적 질문을 던진 순간이 아닌가 싶다. 내가 살아있음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없을 때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기효능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그때 나는 확실히 죽어있었다.




정신이 몽롱하고 온몸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끝이 안 보이던 터널을 통과하던 어느 날 오른쪽 귀에서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쉬고 하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을 나는 명료하게 기억한다.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기분, 다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 진정한 감사의 외침이 피어오른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음의 소리는 기도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소곤소곤 말을 걸어올 때,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의 변화를 절로 알아챌 때, 영어 듣기평가 하듯이 귀를 쫑긋하고 타자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말투에서 감정을 읽어낼 때, 이제는 안도하고 감사하게 된다. 너무도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그 소소한 삶의 일들이 감사한 행복의 조각이란 걸 발견하는 데 보름의 시간은 충분했다. 실존을 마주하고 삶의 기둥을 세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타자들의 그것과 분리될 수도 격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 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나의 삶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고 내 몫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고 근거이며 환자의 정체성이다.’ 작가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에 담긴 이 문장들을 몇 번씩 곱씹으며 읽었는지 모른다. ‘소리 없음’에서 시작한 나의 여정은 연약한 몸을 둥둥 우려내고선, 관계 속에 담겨 있는 나의 존재를 적확하게 매만지게 도와줬고 내 삶을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불씨 하나를 피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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