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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자 정연 Sep 03. 2022

최혜진과 원탁의 ‘기사들’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북토크 후기

최혜진 작가는 때로는 도끼를, 때로는 날카로운 칼을 나에게, 우리에게 휘둘렀다. 그가 던진 예리한 질문에  생각과 감정이 잘게 쪼개져 흩어졌다가 새로운 덩어리로 뭉쳐져   밖으로 발화되기도 했다. 김영화 작가도 예외일  없어서 ‘바람에 날려버리고 싶은 당신의 껍데기는 무엇인가요?’라는 최혜진 작가의 질문에 ‘(지인들의 ‘적당히  .’라는 말을 떠올리며) 자신을 몰아치며 완벽하게 해내려는 이라고 답했다. 치열하게, 완벽하게 만들어낸 결과물이 우리에게 선물로 전해졌다는 독자의 응원은  껍데기를 다시 알곡의 자리로 가져왔지만 말이다.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 속에서 익명의 누군가로 북토크에 참여하게 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열 명의 독자와 두 명의 작가가 둥그런 원탁에 앉은 것처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는 질문을 한 아름 안고 온 최혜진 작가는 북토크 자리에 참여한 ‘원탁의 기사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작가와의 대화에 초대했다. ‘제주를 떠올리면 어떤 단어가 생각나나요?’부터 ‘이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좋았던 그림은 무엇인가요?’, ‘바람에 날려버리고 싶은 당신의 껍데기는 무엇인가요?’까지 그의 질문은 내 생각과 감정을 쉼 없이 뛰어다니게 했다.


설치미술 작가로 꽤 오랜 기간 작업해온 김영화 작가가 그림책 작가로 지내며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설치미술을 저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안점이 있다면, 그림책은 소통이 중심이 되는 것 같아요. 설치미술 작업을 할 때는 저 자신 안에 갇히는 느낌이 있는데, 그림책 작업은 독자들과의 만남과 소통으로 더 연결되곤 해요.”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맥락으로 그는 설명했다. 나 역시 내면을 탐색하며 글을 풀어갈 때는 내 생각과 감정을 살펴보고 표현하는데 몰두했다면, 글을 타자와 나누고 대화하면서부터는 글쓰기가 소통의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걸 경험했기에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잊혀선 안 될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지 않고 조금은 부담스럽고 거칠어도 그대로 고이 담아 전하려는 김영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살아남은 알곡’으로서 ‘충실히’ 살아가야 함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최혜진 작가의 해석 역시 깊이 공감했다. 걸어온 길이 서로 다른 두 작가의 깊이 있는 티키타카를 듣다가 중간중간 독자로서 한마디씩 거들며 숟가락을 올려놓다 보니 어느덧 소담한 원탁에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먹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을 모티브로 작곡하여 정가 스타일로 멋지게 불러낸 그룹 솔솔의 목소리와 멜로디가 내 마음속 BGM이 되어 조용히 흘렀다.



+ 제주4.3사건은 ‘육지것’인 내게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꽤 멀리 있었다. 김영화 작가의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을 읽으며 그 일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그 사건이 더 궁금해지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이 그림책은 분명 좋은 작품이구나 싶었다. 이야기꽃 출판사 창립기념일에 무등이왓을 거닐며 김영화 작가의 살아있는 설명을 들을 날을 소망해본다.


#인생여행자 #최혜진과원탁의독자들 #무등이왓에부는바람 #김영화작가 #북토크 #이야기꽃 #뭐든지책방 #서울형책방


동요&민요 그룹 <솔솔>
명찰까지 만들어준 북토크는 처음이라 감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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